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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가 포기한 '제주소주'…오비맥주는 살릴까

  • 2026.09.07(월) 17:10

대대적 투자에도 막 내린 '신세계 소주'
오비맥주 품에서 시작된 세 번째 도전
맥주 1위의 영업력 결합…안착이 관건

그래픽=비즈워치

한때 '정용진 소주'로 불리며 국내 소주 시장에 야심차게 뛰어들었다가 사라진 제주소주가 다시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신세계그룹이 아닌 오비맥주의 손을 잡았다. 업계의 관심은 신세계가 대형 유통망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넘지 못했던 소주 시장의 벽을 오비맥주는 넘어설 수 있을까에 있다. 제주소주가 과거 '푸른밤'의 실패를 딛고 오비맥주의 강력한 영업망을 발판 삼아 세 번째 도전에 성공할지에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신세계 소주의 잔혹사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지난 2016년 제주소주 지분 100%를 약 190억원에 인수하며 소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존 '올레소주'를 품은 뒤 브랜드를 '푸른밤'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푸른밤이 내세웠던 특징은 '제주 소주'라는 지역성이다. 제품명도 최성수의 노래 '제주도의 푸른밤'에서 가져왔다. 제주 특유의 청정함과 여행, 감성 이미지를 제품에 입힌 셈이다. 5단계 초정밀 여과와 72시간 숙성 공법을 적용해 기존 소주보다 알코올 향이 적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했다.

신세계그룹이 판매했던 소주 '제주 푸른밤' 2종. /사진=신세계그룹

제주소주는 한때 신세계그룹의 야심작으로 통했다. 당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주도한 사업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푸른밤은 '정용진 소주'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마트라는 막강한 유통채널을 등에 업은 만큼 기존 소주 시장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푸른밤은 출시 초기 빠르게 판매량을 늘리며 출시 4개월 만에 300만병 판매를 돌파했다. 

하지만 초기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주소주의 매출은 2016년 2억원 수준에서 2020년 50억원까지 늘었다. 그러나 매출보다 적자가 더 빠르게 늘면서 사업을 이어갈수록 손실 규모가 커졌다. 결국 인수 후 4년간 670억원의 누적 손실을 냈다.

이마트는 수차례 자금을 수혈하며 제주소주를 살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신세계그룹은 2021년 국내 소주 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이후 제주소주는 신세계L&B로 흡수합병됐다. 한때 국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용진 소주'는 그렇게 국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오비맥주 품에서 재도전

제주소주는 국내 사업을 접었지만, 제주공장에서는 수출용 과일소주 등을 생산하며 사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제주소주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2024년 오비맥주가 신세계L&B로부터 제주소주를 인수하면서다. 오비맥주는 같은 해 제주소주를 흡수합병하고 공장 명칭을 '오비맥주 제주공장'으로 바꿨다.

오비맥주는 제주소주 인수를 통해 기존 생산시설과 인력, 기술력은 물론 소주 생산 노하우까지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그동안 제주공장에서 수출용 소주를 생산하며 해외 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래픽=비즈워치

약 2년 동안 해외 시장용으로 활용해 온 제주공장은 이제 다시 국내 소주 생산기지로 사용된다. 오비맥주는 이달 말 이곳에서 생산한 제로 슈거 소주 '찰랑'을 국내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 푸른밤을 만들던 바로 그 공장에서 제주소주가 국내 사업을 중단한 지 약 5년 만에 재도전에 나서는 셈이다.

신제품 '찰랑'은 제주 동부의 청정 화산암반수를 사용한 '제로 슈거 소주'다. 인위적인 알코올 향과 단맛은 줄이는 대신 제주 용암해수소금을 넣어 감칠맛을 더했다. 단순히 '순한 소주'를 내세우기보다 단맛과 알코올 향을 줄이고 맛과 향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는 게 오비맥주의 설명이다.

알코올 도수도 15도로 낮췄다. 롯데칠성음료의 '새로'와 하이트진로의 '진로'보다 각각 0.7도 낮은 수준이다. 제로 슈거와 저도주를 앞세워 가볍게 즐기는 최근 주류 소비 흐름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제품 저장과 운송 역량을 확대하는 시설 투자도 병행했다. 찰랑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공이 다르다

이번 재도전이 과거 신세계 시절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유통 전략'이다. 신세계는 이마트라는 대형마트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소주 소비의 핵심 공간인 음식점과 주점 등 유흥 채널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영업력이 약했다.

반면 오비맥주는 다르다.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카스 프레시'를 앞세워 수 십년간 전국 음식점과 주점에 촘촘한 영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마트나 백화점과 달리, 식당과 주점은 주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어서 어떤 브랜드를 입점시키느냐를 두고 치열한 영업전이 벌어진다. 유흥 채널에서는 제품력만큼 영업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비맥주 역시 '찰랑' 출시 초기에는 수도권과 제주 지역의 식당 및 주점에 영업력을 집중키로 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소주 제품인 만큼 우선 소비자 반응을 살피고 브랜드 자체를 알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기존에 관계를 맺어온 주류 도매상뿐만 아니라 식당과 프랜차이즈 등에서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초기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찰랑/사진=오비맥주

이는 푸른밤이 실패했던 지점을 보완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다만 맥주 시장에서 보여준 오비맥주의 영업력이 소주 시장에서도 그대로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소주 시장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기존 강자들의 지배력이 견고하다. 신제품이 꾸준히 등장하지만 대부분 반짝 인기에 그치는 이유다.

결국 업소에 제품을 입점시키는 것과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그 제품을 주문하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다. 관건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제품의 '맛의 완성도'에 달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새로는 출시 초기 맛에 대한 평가가 시장 기대치를 넘어서면서 고객들의 꾸준한 주문이 이뤄졌다. 이는 새로를 취급하지 않던 식당과 주점의 발주로 이어졌다. 초기 반짝하는 관심을 넘어 시장에 안착하게 된 계기는 고객이 만든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스가 맥주 시장에서 오랜 기간 독주하고 있지만 소주 시장에서도 새로처럼 후발주자가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한 사례가 있는 만큼 성공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제품을 입점시키는 것보다 업소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오비맥주의 기존 맥주 영업망은 분명 강력한 무기지만 이미 시장을 과점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소비자들이 '찰랑'을 지속적으로 찾게 만들 수 있을지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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