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 '오뚜기' 메뉴가
지난 6월 초의 일입니다. 오뚜기가 콜라보레이션 기획을 하나 공개했습니다.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요즘은 '협업'을 하지 않는 기업을 찾기가 더 힘듭니다. 유명 IP를 보유한 캐릭터 기업과의 협업은 물론, '이런 조합으로 콜라보를 한다고?' 싶은 곳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오뚜기의 올 여름 콜라보 기획안은 눈에 띄었습니다. 수원 통닭골목을 대표하는 치킨집 '진미통닭'과의 협업이었다는 게 첫 번째, 오뚜기가 진미통닭 제품을 간편식화해 출시하는 게 아닌, 진미통닭에서 오뚜기의 소스를 이용한 메뉴를 선보인다는 게 두 번째였습니다.
오뚜기는 지난 6월부터 오는 연말까지 진미통닭에서 협업 제품 2종을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오뚜기카레 소스를 치킨에 버무린 '오뚜기카레 통닭'과 진짬뽕 소스를 접목한 '진짬뽕 통닭'입니다.
진미통닭은 수원을 대표하는 인기 통닭집이지만 전국에 퍼진 프랜차이즈가 아닌, 로컬 브랜드입니다. 그만큼 협업 효과도 협소할 수밖에 없죠. 또 협업 제품을 진미통닭 매장에서만 선보인다는 건 매장에 방문하지 않으면 오뚜기와의 협업 소식을 알 수도 없다는 겁니다. 아마 일반적인 다른 협업이었다면 오뚜기가 '진미통닭'을 제품화해 냉동 치킨으로 판매했을 겁니다.
오뚜기의 '이색 협업' 행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난 4일에는 전국에 30여 개 매장을 보유한 멕시칸 푸드 브랜드 '타코부스'와 협업해 신메뉴 '치폴레 싸이 타코 with 타바스코® 살사 피칸테'를 기간 한정으로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오뚜기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타바스코 소스의 신제품 '타바스코 살사 피칸테'를 알리기 위한 협업입니다. 진미통닭보다야 매장 수가 많고 요즘 핫한 멕시칸 푸드를 선보이는 타코부스지만, 이 역시 '전국구 브랜드'라기엔 조금 아쉽죠.
낡은 술은 새 부대에
경쟁사인 농심을 보면 두 회사의 전략 차이가 보입니다. 농심은 이달 올리브영이 진행하는 '산리오 캐릭터즈' 콜라보에 참여해 닭다리너겟과 포테토칩 등에 산리오 콜라보를 진행합니다. 지난 6월엔 '동대문엽기떡볶이'와 손잡고 '포테토칩 엽떡로제맛'을 내놨고요. 2월엔 삿포로 눈축제와 퀘벡 윈터 카니발에 참여했죠. 그 전엔 모두가 알고 계시듯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콜라보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오뚜기가 경쟁사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데는 일관성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영 니치 마켓'을 잡겠다는 의도입니다. 오뚜기는 올해로 창립 57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기업입니다.
대표 제품인 '케챂(케찹이 아닙니다)'은 1971년 출시됐으니 오뚜기의 역사를 거의 모두 함께 했고요. '3분 카레'는 1981년, '진라면'은 1988년에 출시됐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깊다는 건 그만큼 '낡은' 이미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문에 최근 오뚜기의 협업은 대부분 1020 젊은 층을 잡기 위한 틈새 시장 공략에 집중돼 있습니다.
진미통닭은 1020의 핫한 데이트 장소인 수원 행궁동에 인접해 있습니다. 수원 통닭거리의 인기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자 레트로 트렌드의 수혜주이기도 합니다.
타코부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멕시칸 푸드는 최근 젊은 층에서 떠오르는 음식입니다. 타코부스뿐만 아니라 쿠차라, 낙원타코 등 인기 맛집들이 즐비하고요. 이달 초 상미당홀딩스(구 SPC)가 미국 최대 멕시칸 푸드 브랜드인 '치폴레'를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의 왕자도 '멕시칸 푸드'의 가능성을 높게 본 겁니다.
너는 다 생각이 있구나
오뚜기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강소 브랜드, 로컬 맛집과의 협업을 통해 오뚜기라는 브랜드에 신선함을 더할 수 있다는 계산을 세웠습니다. 친숙한 소스들을 '맛집'의 레시피로 선보이며 식상한 오뚜기 제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진미통닭에선 카레와 진짬뽕 소스를 치킨에 접목하며 색다른 조합을 시도했죠. 뿐만 아니라 머스타드와 카레소스, 마요네스를 더한 '요피소스', 오뚜기 케챂과 마요네스를 더한 케요네스에 다시 타바스코 소스를 더한 '스파이시 케요네스 소스'를 추가로 제공하며 '소스왕국' 오뚜기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타코부스와의 협업 역시 지난 6월 출시한 신제품 소스 '타바스코 살사 피칸테'를 알리는 데 최적의 조합이 멕시칸 푸드 전문점이라고 봤습니다. 다소 익숙하지 않은 외국 소스인 만큼 거부감이 낮은 전문 음식점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겠다는 의도죠.
이런 강소 브랜드와의 협업은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상생 활동이기도 합니다. 오뚜기가 식품 분야에서 쌓아온 인지도와 영향력을 활용해 좋은 로컬 브랜드나 작은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함께 알리고 성장 기회를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하긴 대형마트 냉동 코너에 '오뚜기 진미통닭'이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진미통닭 매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정판 카레 통닭이 있다고 하면 당장 수원 통닭거리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게 바로 '기획의 힘'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