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주부 A씨는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계란 한 판을 구매했다. 최근 들어 건강과 친환경 등에 관심이 늘어난 그는 계란 역시 친환경 계란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에 '1등급'이라는 단어가 크게 쓰여 있는 제품을 선택했다. '1번란'이 닭을 자연에 풀어놓고 길러 낳은 계란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1번란과 1등급란이 아무 상관 없는 다른 구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계란 분류하기
우리나라의 계란 등급 분류 기준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크기에 따른 기준이 있다. 체계적인 분류가 이뤄지기 전부터 관행적으로 이어지던 기준을 구체화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왕란, 특란, 대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68g이 넘으면 왕란, 60~68g 미만은 특란, 52~60g 미만은 대란이다.
계란 유통이 체계를 갖추기 전부터 통용되던 크기별 분류에 기준을 세운 이 분류법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돼 왔다. 이름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왕란과 특란, 대란은 이름만 보면 어느 계란이 큰 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5월 계란 중량에 따른 규격 명칭을 2XL, XL, L, M, S 등 해외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격으로 바꿨다.
계란의 등급 분류는 크기 외에도 2가지가 더 있다. 품질에 따른 등급 분류와 사육 환경에 따른 난각번호 분류다. 품질에 따른 등급 분류의 경우 무작위 표본 추출을 통해 외관검사, 투광검사, 할란검사(달걀을 깨 내용물을 확인하는 검사)를 거쳐 1+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등 4개 등급으로 판정한다.
난각번호는 사육환경에 따른 분류다. 케이지에 가두지 않고 야외에 방사해 기른 닭이 낳은 계란은 '1번란'이다. 닭 1마리 당 1.1㎡의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2번란은 1㎡당 9마리 이내의 닭을 평사에서 길러야 한다. 3번란은 마리당 0.075㎡의 공간만 허용된다. 들판이나 평사가 아닌 케이지에서 기른 닭이다. '배터리 케이지'로 불리는 마리당 0.05㎡의 케이지가 허용되는 4번란은 내년 9월부터 생산이 금지된다.
1등급≠1번
문제는 소비자들이 사육환경을 의미하는 1번란과 품질 등급인 1등급란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상대적으로 1등급란은 보기 쉬운 반면, 1번란은 물량이 적어 비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1등급란'을 '1번란'으로 오인하곤 한다. 패키지에 강조된 '1등급'은 달걀의 위생과 흰자·노른자의 탄력도 등을 검사해 신선도가 높다는 보증이 된 계란이다. 반면 '1번란'은 계란을 낳은 닭의 사육 환경이 좋다는 걸 의미한다.
기업들의 마케팅도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생산한 4번란이지만 패키지 전면에 '1등급'을 강조해 소비자의 오인을 유도한다.실제로 CJ프레시웨이, 청정원, 하림, 쿠팡 등에서 판매하는 계란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낳은 4번란임에도 패키지에는 '무항생제', '1등급'이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다.
케이지에서 자란 닭이 낳은 4번란임에도 패키지에 푸른 들판과 닭을 넣어 방목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계란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디자인도 지적된다. 1등급 표기와 자연을 묘사한 패키지가 더해지면 소비자들은 '1등급 4번란'을 방목 환경에서 기른 닭이 낳은 '1번란'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난각번호와 품질 등급을 동시에 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각번호 1~2번란의 경우 마케팅을 위해 패키지에 '1번란' 혹은 '동물복지' 등의 문구를 넣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4번란의 경우 계란 껍데기에만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접 상품을 확인할 수 없는 이커머스의 경우 구매 전 난각번호 확인이 어려운 제품도 많다. 이에 난각번호를 등급 표시와 동일하게 표기하도록 해 소비자의 오인을 막자는 주장이다.
다만 기업에서는 난색을 표한다. 현실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4번란이 공급량의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를 등급 표기와 함께 노출시키는 건 소비자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다. 난각번호의 경우 케이지 여부와 마리당 공간의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만큼 먹이나 건강상태, 계란의 신선도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박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케팅적 측면에서 등급 표기를 강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소비자가 이를 사육 환경으로 오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난각번호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커머스 구매 등의 상황이 많은 만큼 난각번호를 패키지에 의무적으로 기입하게 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