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새파란 하늘 아래 아스팔트 도로. 오토바이 한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하늘에서는 헬기가 거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오토바이의 뒤를 바짝 쫓는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뒤를 흘끗 돌아본 뒤 더 속도를 낸다.
긴박한 질주를 이어가던 남자는 그대로 앞서 달리던 대형 화물차의 컨테이너 안으로 뛰어든다. 컨테이너 안에서 기다리던 여성이 그에게 음료 한 캔을 건넨다. 남자는 시원하게 맛을 본다. "사랑해요, 밀키스!" 하고 외친 그는 캔에 입을 맞추고 이마에 툭 갖다 댄 채 호쾌하게 웃는다.
1989년 롯데칠성음료가 유성탄산음료 '밀키스'를 출시하며 내놓은 광고입니다. 광고 속 주인공은 당시 국내에서도 신드롬급 인기를 끌던 홍콩 배우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이었습니다. 헬기와 오토바이 추격전으로 한 편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30초짜리 CF는 당시 시장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밀키스는 이 광고 하나로 단숨에 유성탄산음료 시장 1위 자리에 올라 37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외국인 모델 전성시대
밀키스는 1989년 롯데칠성음료가 야심차게 내놓은 유성탄산음료 신제품이었습니다. 유성탄산음료란 우유와 탄산을 섞은 제품을 말하는데요. 국내 첫 유성탄산음료는 1986년 출시된 코카콜라의 '암바사'였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이보다 3년 늦게 밀키스를 선보이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는데요. 문제는 이때도 소비자들이 이 카테고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밀키스는 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였습니다. 단숨에 인지도를 끌어올릴 방법이 필요했죠.
롯데칠성음료가 택한 것은 '스타 모델'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영웅본색'으로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홍콩 배우 주윤발이었습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영웅본색 속 주윤발처럼 성냥개비를 입에 무는 흉내까지 유행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롯데칠성음료가 이 스타를 모셔오는 데 들인 정성도 상당했습니다. 1년 출연 계약금은 9000만원에 달했다고 하고요. 광고 촬영을 위해 제주도까지 로케이션을 다녀왔습니다. 헬기를 띄우기까지 하면서 '블록버스터급' 광고를 완성했죠.
특히 주윤발은 국내 광고에 등장한 첫 외국인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1989년 2월 방송광고심의규정에서 외국인 모델 출연금지 조항을 삭제하면서 규제가 사라진 덕분이었습니다.
주윤발의 등장은 당시 광고업계 전반에 불었던 외국인 모델 붐의 신호탄이었습니다. 해태음료는 같은해 4월 우유탄산음료 '크리미'를 내놓으며 홍콩 배우 왕조현을 광고에 내세웠고요. 미국 가수 티파니와도 '써니텐' 광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외에도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드봉' 광고에, 미국 가수 케니 로저스는 동서식품 '맥스웰' 커피 광고에 출연했죠. 현재도 회자되는 동양제과 '투유' 초콜릿 광고에는 주윤발과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끌던 홍콩 배우 장국영이 얼굴을 비쳤습니다.
이들의 몸값도 상당했는데요. 1990년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소피 마르소가 드봉 광고로 벌어들인 순수입은 9000만원에 달한다고 하고요. 왕조현, 장국영 등도 5000만원 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톱스타 배우들이 1년 광고 계약으로 1억원을 받는 경우가 극히 일부 있었다고 하니, 단발성으로 출연한 이들의 몸값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죠.
1위 제쳤다
그래도 광고 효과만큼은 확실했습니다. 여러 외국인 모델 광고 중에서도 주윤발의 효과는 유독 두드러졌는데요. 밀키스 광고 말미 주윤발이 외친 "사랑해요, 밀키스"는 그해를 관통하는 유행어가 됐고요. 그가 음료 캔을 이마에 대는 포즈까지 젊은 층이 따라 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주윤발 광고는 선두주자였던 암바사 독주 체제도 완전히 흔들어놨습니다. 출시 당시만 해도 밀키스는 유성탄산음료 시장에서 한참 뒤처진 후발주자였습니다. 밀키스와 크리미가 출시된 1989년 상반기 판매량을 살펴보면, 암바사는 300만 상자(250㎖ 24개 기준)를 기록하며 롯데칠성음료(56만 상자)와 해태음료(20만 상자)를 크게 앞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윤발 광고로 밀키스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양이 팔려나가 공급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미 계약돼 있던 동남아 수출 물량조차 제때 보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고 하죠.
이어 밀키스는 출시 3년 만인 1992년 유성탄산시장 양강 구도를 공고히 했고요. 1994년에는 마침내 판매량 기준 1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이 순위를 경쟁 브랜드에 내준 적이 없습니다.
밀키스는 현재도 롯데칠성음료의 '효자' 브랜드입니다. 2018년에는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델몬트주스, 레쓰비 커피에 이어 롯데칠성음료의 5번째 누적 매출 1조원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재도 국내 유성탄산음료 시장 점유율은 2위 브랜드와의 격차가 매우 큽니다.
K음료 대표주자
주윤발 효과는 국경을 넘어서도 이어졌습니다. 주윤발 광고 덕분에 대만과 홍콩에서 밀키스 인지도가 함께 오르면서 1992년 대만 수출길을 열 수 있었는데요. 때마침 같은해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를 맺으면서 러시아 수출길까지 열렸습니다.
이때 부산항에 드나들던 러시아 무역상들이 밀키스를 자국에 소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30여 년 전 홍콩 배우 한 명으로 뚫어놓은 물꼬가 오늘날 밀키스의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지금 밀키스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팔리는 K음료 대표주자로 성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는 밀키스가 유성탄산음료 시장 선두를 달리는 핵심 거점입니다. 지난해 기준 밀키스의 러시아 수출액은 전년보다 10% 넘게 늘었습니다. 밀키스와 흡사한 이름·패키지의 모조품이 러시아 현지에서 나돌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만큼 밀키스라는 브랜드가 현지 시장에 안착했다는 뜻이겠죠.
밀키스는 최근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는 밀키스 패키지의 영어 표기를 인도네시아어로 바꾸는 등 현지화에 나서면서 현지 편의점·마트 체인에 제품을 들여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는 중입니다. 지난해 여름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에서 매운맛 음식과 밀키스를 함께 즐기자는 캠페인을 벌인 게 대표적입니다.
주윤발이 외쳤던 '밀키스'는 이제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미국 소비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습니다. 후발주자를 단숨에 1위로 끌어올렸던 광고의 파급력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밀키스를 세계 시장으로 이끄는 강력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