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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아시아 금융허브'에서 빠진 것

  • 2020.07.28(화) 16:58

빅테크에 유리한 구조…금융권 불안감 고조
혁신 과정 낙오자 없어야 시장 매력도 커져

'아시아 금융허브' 타이틀 쟁탈전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최근 홍콩 내 보안법을 강행한 결과 홍콩 소재 외국 회사들이 잇따라 홍콩을 떠날 채비를 서두르면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국내외 매체들은 싱가포르와 도쿄, 시드니에 이어 서울을 아시아 금융허브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는데요.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 의원은 "미·중 마찰이 이어지는 가운데 홍콩의 금융허브 역할이 위축되고 있고, 단기간에 이 현상이 해소될 것 같지 않다"며 "이런 시기에 한국이 아시아 금융허브로 큰 시야를 갖고 금융 혁신을 이루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이 IT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감안한다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세계를 앞서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이 여러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의 국가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금융 영역에서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 의원 언급에 "큰 그림에서 방향을 잡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아시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으로 '디지털 혁신'을 강조한 건데요.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과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삼고 있습니다. 디지털 뉴딜은 다양한 영역의 데이터 확충과 비대면 인프라 구축을 핵심으로 꼽습니다.

데이터와 비대면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요즘은 개인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할인 팁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목돈을 모으는 데 필요한 투자상품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업체들이 편의성을 전면에 내세워 금융소비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금융업계는 플랫폼업체들이 제판분리 현상을 촉진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판분리는 제조와 판매가 나뉜다는 뜻인데요.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만들면 플랫폼 사업자가 이를 가져와 판매합니다. 사용자는 플랫폼업체가 제공한 상품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자체 플랫폼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다면 기존 플랫폼 사업자에 결국 고객 접점을 빼앗기게 되고, 이렇게 되면 플랫폼 사업자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며 위기감을 드러냈습니다. 시가총액 47조원 네이버와 15조원의 신한금융지주가 플랫폼을 놓고 싸워봤자 네이버가 완승할 게 뻔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상품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대출이자를 낮춰 제공한다든지 높은 수익률의 펀드를 출시하면 고객들은 알아서 몰리게 될 것이란 일종의 긍정론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디지털 혁신 정책이 사실상 핀테크, 빅테크 육성에 방점이 찍힌 것을 감안하면 금융회사의 운신폭이 상당히 제한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금융업계는 디지털 환경 속 생존 자체를 불안해 합니다. 핀테크와 빅테크에 치우친 정책을 넓혀달라고도 합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디지털 하이웨이를 만든다고 했는데 (하이웨이 구축) 혜택을 대형 IT업체뿐만 아니라 업계 안에 있는 모든 업체가 어떻게 하면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의 역할은 자금을 조달해 적절한 곳에 배분하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은행은 홍콩의 금융허브 발전요인 중 하나로 합리적 규제를 꼽았습니다. 시장 질서에 입각한 평등한 법원칙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겁니다. 정부가 시장 혁신을 명분으로 누군가를 내친다면 금융허브 매력도는 뚝 떨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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