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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복현 금감원장의 '현명한 판단'

  • 2022.11.12(토) 13:00

"외압 없다"던 이복현, 불복소송엔 불편함 비쳐
다른 후보 길 열어주는 결과로 '신뢰 훼손'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과거 우리은행장 당시 라임펀드 사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문책 경고이기 때문에 손 회장은 3년간 금융회사에 취업이 제한된다. 금융권은 당국이 이 사안을 왜 지금 정리했을까 의구심을 갖는다.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뒀고, 연임 가능성도 열어둔 인물이다.

그는 금융위로부터 파생 결합펀드(DLF) 관련 징계를 받았지만 취소청구 소송 1·2심에 승소했다. 현재는 최종 판결만 남겨둔 만큼 과거 당국 징계는 무효화될 수 있다. 비슷한 법정 다툼의 소지가 있다보니 라임펀드 사안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판단을 미뤄왔다.

그러다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에 금융위 제재 결정이 나왔다.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기존 인물을 대신 할 후보가 여러 경로로 물밑 작업중이라는 말이 파다해서다. 금융위 결정을 두고 외압설이 불거진 이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외압설 불에 휘발유를 부었다. 그는 금융위 결정이 있던날 아침 기자들에게 "너무 지체돼 있다고 국회에서도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손 회장의 중징계에 정치권 입김이 있었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소방수 격이었다. 금융위 결정 다음날(10일) 기자들의 외압설 질문에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치적 외압은 없었으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정치적이든 이해 관계자 외압이든 그런 것들에 맞서고 대응하는 것은 (검사로) 20년간 전문성을 갖고 해왔던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손 회장의 징계 취소 소송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 아이러니했다. 이 원장은 "과거 소송 시절과는 달리 지금 같은 경우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며 입을 뗐다. 

그리곤 "이를 고려할 때 당사자(손 회장)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손 회장에게 '소송을 내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라 해석할 여지가 크다. '현명한 판단'이란 징계 취소 소송을 하지 않는 것이고, 이 경우 내년 3월 이후 그의 금융권 재취업은 제한된다. 대놓고 연임 도전을 접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행정처분에 불복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권리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사안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 손 회장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번에도 금융권의 관심은 손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가 아니라 취소 소송 여부였다. 금감원장의 발언은 그가 법조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 실망을 낳고 있다. 법정에 판단을 구할지 결정해야할 이에게 선택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다.

이 원장의 의도가 어쨌든 손 회장의 연임 도전 저지는 곧 다른 후보에게 길을 열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가 그렇게 강조한 "외압은 없다"는 말의 진정성이 '현명한 판단' 한 마디에 지워진 셈이다.

이번 달부터 내년 초까지 금융권은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신한금융지주, BNK금융지주, 수협은행 등 민간 금융사들의 최고경영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IBK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 등의 수장 자리도 채워야 한다. 금융권뿐 아니라 각계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자리다. 

당국 수장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진정성 없는 태세를 보이면 당국도 금융권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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