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금융지주 간 합병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대신 소유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전산과 백오피스만 공유하거나, 은행이 지역상사나 재생에너지 같은 비금융업무를 직접 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일본 지방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일본 지방은행의 이같은 경험을 국내 지방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의 참고 사례로 제시했다.
앞서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BNK금융지주와 JB금융지주에 합병 타당성 검토를 공개 제안했다. 합산 자산 200조원 이상의 지방금융지주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두 지주 이사회 모두 검토에 착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방은행만 할 수 있는 일
전문가들은 지방은행의 수익성과 별개로 시중은행이나 인터넷전문은행이 하기 어려운 지방은행만의 역할이 있다고 짚었다.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과 지역 금융소비자에 대한 은행서비스, 지역균형발전 기여 등이다.
특히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지역 중소기업에 대해 오랜 거래로 쌓은 비재무 정보를 바탕으로 관계금융 방식의 여신을 제공하는 역할이 강조된다.
지방은행의 대출 증가율은 해당 은행이 주요 영업 근거지로 삼는 광역자치단체의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업여신이 제한되는 인터넷은행과도 차별화된 역할이다.
하지만 지역소멸 위기와 시중은행·인터넷은행의 영업력 강화 등으로 지방은행의 체력이 소진되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보고서는 해법으로 업무범위 개방과 은행 간 연대 강화, 규모의 경제 확보를 꼽았다.
일본은 은행법을 개정해 은행 본체가 자체 개발한 정보기술 시스템을 외부에 팔거나, 유료 직업 소개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회사 업무범위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에 기여하는 업무'를 추가했다.
이후 한 지방은행이 자회사를 통해 지역 특산물을 직접 매입해 브랜딩하고, 다른 곳은 일본 은행권 최초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다만 국내 은행들이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서 비금융주력자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보유를 허용한 것과 달리, 은행이 산업을 소유하는 길은 여전히 '지분 15%' 벽에 막혀 있다.
합치지 않고 규모 키우기
합병 없는 연대도 대안으로 꼽힌다. 일본 지방은행 10곳이 참여한 ‘쓰바사 얼라이언스’가 대표적이다.
합산 총자산 80조~90조엔에 달하는 이 연합은 지주회사로 묶거나 합병하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드는 업무만 골라 공유한다.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자금세탁방지 공동센터를 세워 개별 은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국제 규제에 함께 대응한다. 최근에는 계좌이체와 송금, 상속 등 중복 백오피스 업무를 공동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공동사무센터도 가동했다.
소유구조에 변화가 없어 결성이 쉽고 추가 참여도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국내에도 지방은행이 공동 개발한 ‘지방은행 공동정보망’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이를 확장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제언이다.
보고서는 같은 지주회사 안에 있는 두 은행을 합병하는 것이 필요하고, 단기적으로 전산시스템 통합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지주회사법상 방화벽 설치와 정보 분리 등의 요건만 갖추면 가능한 조치다.
실제 JB금융그룹이 지난해 광주은행과 전북은행 통합 전산센터를 추진했지만, 노동조합이 이를 ‘원뱅크 준비 단계’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결국 통합 센터 대신 개별 구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주 간 합병 역시 내부 반대에 부딪혔다. 얼라인파트너스 제안 이후 각 지방은행 노조의 반대 성명이 이어졌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 금융지주회사 내부 이해관계자들이 전산통합이 은행 합병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