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이 지난 8월 시행된 가운데 기존에 등재돼 있던 의약품에 대한 약가인하 시행 시점이 내년 4월로 연기됐다. 제약업계는 약가인하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시행 시점이 늦춰지면서 제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이번 약가제도 개편에서 신규 등재 의약품과 기존 등재 의약품은 적용 방식이 다르다. 신규 등재 의약품은 제도 개편 이후 새롭게 건강보험에 등재되는 의약품을 의미한다. 지난 8월부터 약가 산정기준이 바뀌면서 앞으로 건강보험에 새로 등재되는 제네릭(복제의약품)에는 개편된 산정기준이 즉시 적용되고 있다.
반면 기등재 의약품은 이미 건강보험에 등재돼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이들 의약품은 기존 약가가 책정돼 있는 만큼 제도 개편과 동시에 일괄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재평가를 거쳐 약가를 인하하게 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1차 약가인하에 착수할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26일 열린 '약가제도 개선 이행 제5차 실무협의체'에서 산업계와 논의한 끝에 시행 시점을 내년 4월로 늦추기로 결정했다.
약가인하와 혁신형·준혁신형 특례 적용 혼선 해소
제약업계가 이번 시행 연기를 반기는 이유 중 하나는 올해 12월 예정된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과 기등재 의약품 약가인하 시행 시점 간 충돌을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와 신약 개발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제약기업을 정부가 인증하는 제도다. 인증 기업에는 일반 제약기업과 달리 약가 산정 과정에서 우대 혜택이 적용된다.
문제는 당초 일정대로라면 기등재 의약품 약가인하가 올해 하반기 먼저 시행되고, 12월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이 이뤄지는 순서였다는 점이다.
약가인하가 먼저 이뤄지면 신규 인증 기업에 적용되는 약가 우대 특례를 이미 진행된 약가 조정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두고 행정적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였다.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약가인하 적용 시점이 내년 4월로 늦춰지면서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이 먼저 이뤄지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신규 인증 기업에 대한 약가 우대 혜택을 약가 조정 과정에 온전히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산업계 의견 반영으로 약가인하 대응 여력 확보
업계에서는 단순히 약가인하 시점이 몇 개월 늦춰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약가인하는 의약품 판매가격을 낮춰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R&D 투자와 생산시설 등 인프라 투자, 인력 채용 및 신사업 추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행 연기로 제약기업들이 약가인하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추가로 확보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약가인하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 경영 및 사업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등재 의약품 약가인하 일정이 연기됐다고 해서 약가인하에 따른 기업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약가인하는 내년 4월부터 예정대로 진행되는 만큼 제약기업들은 가격 인하에 따른 매출 및 수익성 감소에 대응해야 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산업계의 현실적인 의견이 정부 정책의 세부사항에 다수 반영되면서 약가인하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고 일정 부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약가인하에 따른 기업들의 어려움은 여전히 큰 만큼, 앞으로도 약가인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고 약가인하가 연구개발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