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먹는 알약 제형의 임신중지 의약품을 내년 1분기까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실제 의료현장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기준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임신중지 의약품은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 조직을 배출함으로써 그동안 수술 중심이었던 임신중지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도입에 앞서 자궁외임신 여부와 임신 주수 등을 확인하고 복용 후 출혈이나 감염 등 이상반응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체계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신중지약 국내 도입 초읽기…1분기 도입 목표
정부는 내년 1분기 국내 도입을 목표로 임신중지 의약품의 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재 심사 중인 제품의 안전성·유효성·품질과 위해성관리계획 등을 검토하고 있다.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처방과 조제를 직접 맡도록 해 약국에서는 조제·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이후 운영 결과와 관련 법 개정 여부 등에 따라 운영 방식을 조정할 계획이다.
현재 허가 심사를 받고 있는 제품은 현대약품이 수입품목 허가를 신청한 '미프지미소'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약물로,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고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중지를 돕는다. 사용 대상은 임신 9주(63일) 이내로 제한된다.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병용요법은 해외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00년 임신 7주(49일) 이내의 임신중지에 사용하도록 처음 허가했으며, 2016년 사용 범위를 임신 10주(70일) 이내로 확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임신중지 관리 지침(Abortion care guideline)을 통해 해당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가 수술만큼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의료계, 임신중지약 관리체계 마련 목소리
약물적 임신중지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 수술 없이 간편하게 약을 복용해 임신 초기 단계에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출혈과 복통, 구역·구토 등의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한 출혈이나 감염으로 추가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자궁외임신에는 효과가 없다. 출혈이 잘 멎지 않는 질환이 있거나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는 사람, 부신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는 사람은 미페프리스톤 사용이 제한된다.
이에 약물을 사용하기 전 임신 주수와 자궁내 임신 여부, 약물 사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이나 복용 약물을 확인하고, 복용 후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임신중지 약물이 제도권 밖에서 불법 유통되면서 가짜 약으로 인한 피해와 임신중지 실패, 과다출혈 등 안전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여성들이 해외직구 등 위험한 경로를 통해 임신중지 약물을 구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의료진의 관리 아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후 정부의 임신중지 약물 국내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내년 1분기 도입을 목표로 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정식 허가를 거쳐 의료체계 안에서 약물을 유통·사용하면 품질을 관리하고 처방부터 복용 후 관리까지 의료진의 관리 아래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정식 허가와 유통만으로 안전한 사용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어떤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지, 복용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등 구체적인 관리 기준을 약물 도입 전에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방·사후관리 기준 등 안전망 구축 과제
해외에서도 약물적 임신중지는 국가별 의료환경에 따라 관리 기준을 두고 사용되고 있다. 미국은 미페프리스톤에 위험관리체계(REMS)를 적용해 처방 의료진에게 정확한 임신 주수 판단과 자궁외임신 여부 확인, 응급상황 대응 역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약국도 REMS 요건을 충족해 인증을 받아야 미페프리스톤을 조제할 수 있으며, 2023년부터는 대면 조제 의무가 폐지돼 우편 배송도 허용됐다.
일본은 2023년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복합제인 '메피고팩'을 승인하면서 사용 대상과 의료기관, 투약 후 관리 등에 대한 별도의 기준을 마련했다.
의료계에서는 임신중지 약물 도입에 앞서 이 같은 복용 전후 관리기준과 표준 진료지침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약물의 처방과 복용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반응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관계자는 "약물적 임신중지는 자궁외임신 여부를 비롯해 과다출혈, 불완전 임신중지, 감염, 지속 임신 등 의료진의 판단과 사후관리가 필요한 의료행위로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전문의의 사전 판단과 사후 대응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며 "법적 근거와 표준 진료지침, 응급 대응 및 사후관리 체계, 의료진 보호장치 등 실질적인 의료 안전망 구축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년 1분기 국내 도입을 추진하면서 향후 과제는 허가 이후 실제 의료현장에서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데 있다. 정식 유통을 통해 음성적인 약물 거래와 가짜 약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복용 전 임신 상태 확인부터 이상반응 대응과 응급의료기관 연계, 복용 후 확인까지 이어지는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