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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불이' 정신 지켜낸 SK하이닉스

  • 2019.02.01(금) 15:39

임단협 둔 신경전 마무리…노사 양측 한 발 물러서
반도체 업황부진·돈쓸 곳 많다는데 구성원 '공감대'

"채권단이 마이크론에 하이닉스 매각을 강행한다면 임직원 모두 사직할 계획이다. 파업도 불사하겠다."-정상영 당시 하이닉스 반도체 노조위원장(2002년)

SK하이닉스 노조는 '노사불이'(勞使不二·노조와 회사 경영진은 둘이 아닌 하나) 정신을 강조합니다. 전신인 하이닉스 반도체가 지난 2001년 과도한 부채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로 마이크론에 매각되는 것을 반대해 임직원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임직원들의 회사 사랑도 남다릅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모든 직원이 금전적 손실을 무릅쓰고서라도 회사와 함께 위기를 버텼습니다. 임직원들은 무급 휴직에 동의하고 초과 근무수당과 휴일 근무수당을 반납했습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회사와 함께 '노사불이신문화추진협의회'까지 마련해 노사 양측이 화합을 다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간 SK하이닉스가 누리고 있는 호황을 만든 여러 요인중 하나일 겁니다.

다만 이번에 그 오랜 전통이 깨질 뻔 했습니다. 지난달 28일 노동조합 집행부와 회사 측이 마련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합의안이 노조 찬반 투표에서 창립 이래 처음으로 부결됐기 때문입니다. 임단협은 새해 임직원들의 임금 및 복지 여건 등을 결정하는 안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3일 뒤인 지난달 31일에 임단협이 체결되긴 했습니다. 사측이 성과급과 별도로 설과 추석에 각각 50만원씩을 선물비로 지급하기로 제안한 것을 임직원들이 받아들인 것이죠.

노조가 한 차례 거부했던 임단협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속사정이 있습니다. 임단협에서 사안이 아닌 '성과급'이 핵심이었습니다.

회사는 연초 임직원들에게 월 기본급의 1700%에 달하는 사상 최대 성과급을 주기로 발표했습니다. 연간 이익분배금(PS) 1000%, 특별기여금 500%, 생산성 격려금(PI) 200%(상·하반기)로 구성됩니다. 범위를 넓혀 보면 연봉의 85%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노조는 회사가 지난해 거둔 성과에 비해 성과급이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간 매출(연결기준) 40조4451억원, 영업이익 20조8438억원, 순이익 15조54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지난 2017년 실적과 비교한 증감률을 보면 매출은 34.3%, 영업이익은 51.9%, 순이익은 46% 늘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절반이 넘는 52.8%로 제조업에선 보기 드문 성적표입니다.

다만 노조가 받아들 월 기본급 대비 성과급은 지난 2016년 1600%에서 100%포인트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회사가 거둔 성장의 과실을 더 나눠달라는 게 임직원들의 입장이었습니다.

회사가 성과급을 더 지급하기 위해선 그나마 여력이 있는 특별기여금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PS와 PI는 내규상 지급액이 고정됩니다. 다만 회사가 지급할 액수를 기준으로 연봉 25%를 차지하는 특별기여금은 500% 제한 없이 회사가 더 줄 수 있습니다.

회사, 추가 성과급 '철벽방어'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에 부담
노사불이 정신 올해도 이어갈지 주목

특별기여금은 1년새 400%에서 지난해 500%로 100%포인트 오르는데 그친 만큼 더 올려달라는게 노조의 요구였죠.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다른 직종 종사자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보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회사가 사상 최대의 성과를 낸 만큼 직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진통을 겪긴 했지만 회사가 성과급 마지노선을 넘지 않고 명절 선물비를 지급하면서 노사 양측의 갈등은 일단락 됐습니다. 회사는 비용지출 부담을 줄이고 노조는 현금을 손에 더 쥘 수 있어 양측 모두 윈윈(Win-Win) 하는 합의안이죠.

노사가 가까스로 합의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황이 작년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업황 부진이 본격화 돼 올해 서버용 D램 가격이 연간 반토막 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놨습니다.

실제 1월 컴퓨터용 DDR4 8기가비트(Gb) D램 도매가격은 지난달 개당 6달러로 전달 대비 17.2% 떨어졌습니다. 이 기관이 PC용 D램 가격을 발표하기 시작한 2016년 6월 이래 가장 큰 낙폭입니다. 넉달 사이 26.7%나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낸드플래시(128Gb MLC)는 지난달 도매가격이 개당 4.52달러로 4개월새 10.8% 떨어졌습니다.

SK하이닉스는 벌써부터 내상을 입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기 대비 각각 13%, 31.6% 줄었는데요. 지난해 2분기부터 3분기까지 역대 최대 기록을 갱신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입니다.

회사 실적 전망치도 좋지 못한데요.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가 받을 올해 예상 성적표를 매달 낮춰잡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이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란 이유입니다.

회사가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 매는 상황이어서 성과급 추가 지급을 부담스러워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연간 장비투자액을 전년 대비 약 40%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속적 주주환원 정책 확대 요구도 부담일 것으로 보입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SK하이닉스가 '짠물 배당'으로 유명하다고 번번이 지적합니다.

실제 SK하이닉스의 배당성향은 지난 2017년부터 2년 연속 6.6%로 지난해 코스피 시장 평균 배당성향인 18.5%를 밑돕니다. 더욱이 2016년 배당성향이 14.3%로 고점을 찍은 것과 비교해 절반 이상 떨어졌습니다.

배당 총액이 1조260억원으로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늘어난 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도입한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저배당 기업에 배당확대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회사에 직간접적인 압박이 될 수도 있겠죠.

국민연금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은 9.1%로 SK텔레콤(지분율 20.1%)에 이어 2대 주주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예년과 달리 주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에는 임단협이나 성과급을 놓고 또 다른 진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올해초 임단협 과정에서 발휘한 노사불이 정신을 지키면서 앞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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