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환은 태양광이나 수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필요한 전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가 더 급한 과제입니다. 탄소를 줄이면서도 산업을 멈추지 않게 할 연료가 필요한데요. 그 해법으로 LNG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LNG는 'Liquefied Natural Gas'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는 '액화천연가스'입니다. 지하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입니다. 이를 정제한 뒤 영하 162도까지 냉각하면 액체가 되죠. 이렇게 액화하면 부피가 약 60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기체 상태로는 배에 실어 나르기 어렵지만 액체로 만들면 대량 운송이 가능합니다.
비슷한 이름의 LPG와는 성분이 다릅니다. LPG는 프로판과 부탄이 주성분이고, LNG는 메탄 중심입니다. 연소 과정에서 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어 석탄보다 친환경적인 화석연료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교 연료'로 불리죠.
우리 집에서 쓰는 도시가스도 대부분 LNG에서 시작합니다. 해외에서 들여온 LNG를 터미널에서 다시 기체로 기화한 뒤 지하 배관을 통해 가정과 산업 현장으로 공급하죠. 초기에는 인프라 구축 비용이 들지만 한 번 깔리면 안정적이고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가교 연료'
최근 SK이노베이션이 베트남에서 따낸 초대형 프로젝트가 이 LNG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지난 19일 SK이노베이션은 베트남 국영 석유가스그룹 PVN 산하 발전사 PV Power, 현지 기업 NASU와 구성한 컨소시엄이 응에안성 정부로부터 '뀐랍 LNG 발전 사업'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밝혔습니다.
총사업비는 약 23억 달러, 한화로 3조3000억원 규모입니다. 사업 대상지는 하노이 남쪽 220km 지점 응에안성 뀐랍 지역입니다. 이곳에 1500메가와트급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짓고 25만㎥급 LNG 터미널과 전용 항만을 함께 구축합니다. 가스를 들여와 저장하고 전기로 바꾸는 과정을 한 번에 갖추는 구조입니다. 2027년 착공해 2030년 준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베트남은 빠른 산업화와 인구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 구조는 여전히 석탄과 수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전력은 부족하고 탄소 부담은 커지는 상황이죠. LNG는 이 공백을 메울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적고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 카타르 등 글로벌 기업이 경쟁한 끝에 SK 컨소시엄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이번 수주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SK이노베이션의 전략 전환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 실적 발표에서 '전기 사업자로의 확장'을 핵심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정유와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를 넘어 전력 생산과 공급까지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전기차 캐즘과 업황 둔화 속에서 새로운 성장 축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SK E&S를 흡수하고,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하며 사업 구조를 다시 짰습니다. 흩어져 있던 에너지 역량을 한데 모은 셈입니다. 특히 LNG를 중심에 두고 전기화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토대를 다졌습니다.
발전소 숫자보다 중요한 것
SK이노베이션은 미국과 동남아, 호주 등에서 LNG 물량을 차근차근 확보해 왔습니다. 대표 사례가 호주 바로사 가스전입니다. 이곳에서 생산한 LNG는 최근 첫 선적을 마쳤습니다. 앞으로 20년간 연간 130만톤을 들여옵니다. 확보한 가스는 터미널을 거쳐 발전소와 도시가스 사업으로 이어지죠. 자원에서 발전까지 한 흐름으로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남양주 주거지구를 대상으로 1.5기가와트 규모의 열병합발전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해외에서는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LNG 발전과 전력 공급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베트남 뀐랍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략이 해외에서 본격 가동되는 첫 사례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발전소만 짓겠다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너지-산업 클러스터(SEIC)'라는 더 큰 그림을 함께 내놨습니다. LNG 발전소를 안정적인 전력 거점으로 세우고 그 주변에 AI 데이터센터와 물류 허브 등 고부가 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입니다.
뀐랍 터미널 역시 향후 인근 발전소에 가스를 공급하는 허브로 키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LNG를 단순히 태워 쓰는 연료가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를 움직이는 축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현재의 에너지 산업은 '발전소 몇 기를 세웠는지'로 승부를 가르는 시대가 아닙니다. 연료를 어디서 확보하고, 어떻게 운송하며, 어떤 구조로 전기로 전환해 그 전력을 산업과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이 됐습니다. LNG를 축으로 둔 이 구상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에너지 산업의 판도가 어디까지 움직일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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