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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리스크]"펄프값보다 무서운 배삯"…제지업계 이중고 '비명'

  • 2026.03.26(목) 14:05

펄프 760달러·운임 한 달 새 36%↑…비용 부담 임계치
빅2, 수출·펄프자급 방패 삼아 수익성 마지노선 사수
수요 부진 속 인상 관망…사태 장기화 시 인상 불가피

구글 AI 생성 이미지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제지업계의 수익 구조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원재료인 펄프 가격이 석 달 만에 10% 이상 급등한 데다 해상 운임까지 가파르게 오르며 원가 압박이 한계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업계는 고환율에 따른 수출 이익과 원료 직접 생산 등을 방패 삼아 버티고 있지만 전방위적인 비용 상승 폭이 이들 방어 기제의 실익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수익성 보전에 경고등이 켜진 모습이다.

훨훨 나는 펄프값…물류비·에너지 '삼중고'

26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3월 국제 활엽수 표백화학펄프(SBHK) 가격은 톤당 76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600달러대 중후반에 머물던 가격이 올해 1월 700달러를 넘어선 뒤 계속해서 고점을 높이는 모습이다.

펄프는 종이의 주성분이 되는 섬유질로, 인쇄용지나 패키지용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원료다. 높은 수입 의존도는 국내 제지업계의 아킬레스건이다. 무림P&P를 제외한 대다수 제지사가 펄프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국제 가격 상승이 곧바로 원가 부담으로 전이되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원재료 가격뿐만 아니라 이를 들여오고 제품을 내보내는 데 드는 물류비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발 리스크로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항로의 운송 차질이 빚어지면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등 해상 운임 지수가 급등했다. SCFI는 전 세계 컨테이너 운송 경로의 운임을 지수화한 지표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이 선사에 지불해야 하는 배 삯이 비싸졌음을 의미한다.

실제 지난 20일 기준 SCFI는 1706.95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저점을 기록했던 지난달 13일(1251.46포인트)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36% 폭등한 수치다. 1월 말 이후 주춤하며 하락세를 보이던 지수가 중동 리스크 격화와 맞물려 다시 가파른 우상향 곡선으로 돌아선 모습이다. 1년 전(1292.75포인트)보다도 30% 이상 높은 수준으로, 제지업계의 물류비 부담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제품 건조 공정에 필수적인 LNG 등 에너지 비용까지 들썩이며 제지사들은 원재료·물류·에너지라는 전방위적 비용 압박을 받게 됐다.

한솔 '환차익'·무림 '수직계열화' 버티기

그래픽=비즈워치

수익성 악화 우려 속에서 한솔제지·무림 등 국내 제지사들은 각기 다른 사업 구조를 활용해 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는 고환율과 원재료 자급이라는 방패가 비용 상승분을 일정 부분 막아내고 있지만 중동 리스크가 지금보다 길어질 경우 수익성 훼손을 피할 마땅한 출구 전략이 없다는 점이 고민의 핵심이다.

국내 1위 한솔제지는 고환율 기조를 오히려 수익성을 지탱하는 방패로 삼고 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원재료 수입 부담이 커지지만 한솔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출 물량을 바탕으로 이를 일부 상쇄하는 구조를 갖췄다. 

한솔제지는 지난해 별도 기준 전체 매출 2조169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1조1686억원(53.9%)을 해외 시장에서 거뒀다. 달러를 쓰는 양보다 버는 양이 많은 사업 구조가 고환율 상황에서 원가 부담을 상쇄하는 실질적인 수익 지지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제품 수출에 따른 외화 수입분이 원부재료 수입에 따른 지출분보다 많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라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수익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며 "현재의 환율 이익이 급등한 원재료비와 해상 운임 상승분을 일정 부분 방어해주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가 변동성이 워낙 커 실질적인 마진율에 미칠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무림P&P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펄프와 종이를 한곳에서 만드는 일관화 공장의 이점을 공급 위기 상황에서 극대화하고 있다. 외부에서 펄프를 전량 사와야 하는 타사와 달리 울산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펄프를 종이 제조에 즉각 투입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식이다. 원재료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제조 공정 단계에서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수직계열화가 강력한 방어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무림P&P 관계자는 "주원료인 펄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직접 생산하고 있어 타사 대비 원가 부담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펄프 생산을 통한 수익이 종이 제조 비용을 방어하는 선순환 구조"라고 강조했다. 물류 리스크 관리 역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무림 측은 "중동발 위기 직후 수출 물량의 선적을 중단하고 공장 내 보관 장소로 신속히 이동시키는 등 재고 효율화 전략을 통해 창고 보관료 등 별도 비용 발생을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판가 인상' 카드 만지작

기본원지 생산 모습. /사진=한솔제지

비용 부담은 임계치에 도달했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종이 수요 자체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솔제지와 무림P&P 모두 2분기 종이 가격 인상에 대해 "현재 검토 중인 인상 계획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소비가 뚜렷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격을 올릴 경우 오히려 판매량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상 보류 기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물류비와 원가 부담이 경영상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결국 판가 인상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글로벌 물류 대란이 극심했던 지난 2021년과 2022년 당시 해상 운임 지수인 SCFI가 5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치솟자 제지사들은 누적된 비용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도미노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지금은 수요 부진으로 눈치를 보는 관망세가 짙지만 중동발 리스크 장기화로 물류비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수익성 보전을 위한 인상 카드를 다시 꺼내 드는 건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중동 지역 긴장이 길어질 경우 물류비와 에너지 비용 증가 영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불확실성은 특정 산업을 넘어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상황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며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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