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대전환기를 맞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학력 중심의 전통적 채용 틀을 깨고 실력 위주의 인재 선발 방식을 전면 도입하고 있다.
특정 학위나 스펙보다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검증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류는 SK하이닉스의 자격 요건 파격 개편을 계기로 삼성의 장기적 열린 채용 전통과 맞물리며 재계 전반의 새로운 표준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AGI 대비하자" SK의 파격 실험
22일 재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17일 시작한 신입사원 수시채용부터 기존 채용 공고에 명시하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등 학력 자격 요건을 완전히 삭제했다.
지원자가 보유한 경험과 직무 역량, 기업문화 적합성, 성장 가능성만 확인되면 고졸 학력자도 연구직에 배치될 수 있고 대졸자도 생산직에 지원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개편은 인공지능*AI)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추는 AGI 시대를 대비해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실전 역량을 선점하겠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는 환경에서는 특정 학위의 유무보다 현장에서의 유연한 대응력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시한 인재 조건 역시 정형화된 스펙 대신 이러한 실전 능력 검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 회장은 최근 AI 시대 인재의 필수 요건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 근육',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적응 근육', 유연하게 협업하는 '공감 근육'을 제시한 바 있다. 서류상의 학력 필터링을 걷어내는 대신 면접과 실무 검증을 통해 이 세 가지 내실을 갖춘 인재를 직접 발굴하겠다는 의지다.
삼성은 SK하이닉스보다 30년 앞선 1995년부터 공채 전형에서 학력뿐 아니라 성별, 나이, 연고 등의 제한을 폐지하며 역량 중심의 열린 채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정 배경이나 형식적 조건 대신 지원자의 잠재력과 실질적 역량만 평가하겠다는 이 파격적인 선언은 현재까지도 전사적으로 적용 중이다. 스펙 위주의 필터링을 과감히 걷어낸 자리는 면접과 인적성 검사를 통한 철저한 실무 역량 검증이 채웠다.
국내 4대 대기업 그룹 중 유일하게 대규모 정기 공채 전형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도입한 이래 대내외적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정기 채용 시스템을 중단 없이 가동해 왔다.
선입견 없이 선발된 인재들은 이미 그룹의 핵심 제조 및 개발 현장에서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측은 "최근 5년간 고졸과 전문대 학력의 지원자 수천 명이 공채에 지원했다"며 "선발된 인력들은 반도체 AI 팩토리 구축 부서나 핵심 스마트폰 기술력을 담당하는 개발실 등 주요 사업 부문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8만 인재난…서류 대신 실전으로 판가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전통적인 서류 필터링을 걷어내고 기업별 맞춤형 자체 검증 시스템을 통해 인재의 실무 실력을 정교하게 평가하는 추세다.
현대자동차가 학력 등 정형화된 스펙 대신 현업 적합도를 대폭 반영하는 직무 중심 상시 채용을 안착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정보통신(IT)·기술 기업인 KT와 카카오 역시 서류전형에서 학력과 전공 정보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실력으로만 당락을 가르는 학력 무관 블라인드 코딩 테스트, 역량 평가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내 기업들이 채용 방식을 이처럼 고도화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심화와 이에 따른 인력난이 자리 잡고 있다. 실력 위주의 인재 확보 경쟁은 이제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술 경쟁이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31년까지 국내 반도체 분야 부족 인력은 최대 8만1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극심한 인력 가뭄 속에서 국외 경쟁사들까지 국내 전문 인력을 겨냥해 공격적인 채용 공세를 펼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CXMT를 비롯한 해외 테크 기업들은 차세대 메모리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보상을 제시하며 채용 규모를 늘리는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학벌 대신 역량을 중시하는 채용 원칙이 국내 기업 문화에 선제적으로 안착한 삼성의 사례처럼 SK하이닉스의 이번 채용을 계기로 능력 중심의 채용 기류가 업계 전반으로 더욱 확산돼야 국가적 인재 유출을 막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