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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신질서]上 'CPU 제왕' 귀환 속 더 또렷해진 트럼프의 큰 그림

  • 2026.06.25(목) 15:45

美, 보조금·빅테크·인재 총동원…'인텔 살리기'
'설계는 미국, 제조도 미국'…반도체 질서 재편
TSMC 병목에 빅테크 '탈(脫) 대만' 움직임
삼성·SK 출신 영입…인텔 파운드리 재건 가속

지난 20여년간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국가별 분업 체계 위에서 성장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연구개발(R&D), 대만은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첨단 패키징, 한국은 메모리, 일본은 소재와 장비를 담당했다. 애플과 엔비디아가 칩을 설계하면 TSMC가 생산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를 공급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이 같은 질서를 흔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역량을 갖췄지만 최첨단 제조를 TSMC에 의존하는 현실을 더 이상 안보 차원에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텔을 앞세워 반도체 제조업 부활에 나선 배경이다.

미국의 세계 반도체 수출 점유율은 2000년 20.1%(1위)에서 2022년 5.1%(7위)로 떨어졌다. 반면 대만은 같은 기간 6.7%에서 26.4%로 급증하며 세계 최대 반도체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분업 체제가 20여년 동안 굳어진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애플과 인텔의 협력을 직접 공개하고 엔비디아·테슬라와의 협업까지 잇달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업계는 이를 인텔 한 기업의 부활이 아니라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다시 짜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분야별 경쟁 국가./그래픽=비즈워치

'CPU 제왕'의 귀환

인텔은 한때 반도체 산업의 제왕이었다. PC와 서버 시장은 인텔 CPU가 사실상 표준이었고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는 최고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브랜드였다.

몰락은 공정 경쟁력 약화에서 시작됐다. 10나노 공정 개발이 수년간 지연되는 사이 TSMC는 애플·엔비디아·AMD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첨단 공정 시장을 장악했다. AMD는 라이젠과 에픽 프로세서로 PC와 서버 시장을 빠르게 잠식, 애플은 자체 설계한 M1 칩을 도입하며 인텔 CPU와 결별했다. 이후 AI 시대가 열리자 엔비디아는 GPU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앞세워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고 인텔은 주도권을 잃었다.

AI가 인텔을 밀어냈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기회를 안긴 것도 AI였다. 초기 AI 경쟁은 GPU 확보가 승패를 좌우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가 대형화되고 AI 에이전트가 확산되면서 GPU만으로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GPU가 연산을 담당한다면 CPU는 데이터를 공급하고 메모리와 네트워크를 관리하며 작업을 분배하는 '호스트 CPU' 역할을 맡는다. 

AI 에이전트가 실시간 추론·장문 컨텍스트 처리·외부 도구 호출을 반복할수록 GPU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CPU의 역할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엔비디아 차세대 AI 서버 플랫폼인 DGX 루빈에 인텔 제온 CPU가 채택된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의 반도체 전략과도 맞물린다. 인텔은 미국이 보유한 사실상 유일한 첨단 종합반도체(IDM) 기업으로 설계·제조·첨단 패키징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역량을 갖추고도 최첨단 제조를 TSMC에 의존하는 미국으로선 잃어버린 제조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는 핵심 카드다.

트럼프 행정부도 인텔을 사실상 국가 전략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인텔의 비의결권 지분 9.9%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고, 칩스법과 국방부 보안 반도체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한 89억달러를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키로 했다.

민간 차원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인텔에 50억달러를 투자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인텔의 x86 CPU와 엔비디아 GPU를 결합한 PC·데이터센터용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과거 CPU와 GPU 시장에서 경쟁하던 두 회사가 AI 인프라 확대를 계기로 손을 잡은 것으로 미국이 설계와 제조를 아우르는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수출시장 점유율 주요국 연도별 순위 변화./그래픽=비즈워치

'韓 반도체 DNA' 이식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텔의 파운드리 반격은 TSMC의 독주가 만든 빈틈에서 시작됐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TSMC의 첨단 공정과 첨단 패키징 생산라인은 사실상 수년치 물량이 예약된 상태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TSMC에만 의존할 경우 제품 출시 일정까지 늦어질 수 있어 공급망 다변화가 불가피해졌다.

JP모건도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의 추격론은 기술 격차 축소보다 TSMC의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업계는 AI 인프라의 병목도 GPU에서 HBM·첨단 패키징을 거쳐 CPU·네트워크·전력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병목이 옮겨갈 때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만큼 서버 CPU와 첨단 패키징 경쟁력을 갖춘 인텔의 역할도 다시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TSMC의 벽은 여전히 높다. 공정 기술·수율·생산능력·설계 생태계 등 핵심 경쟁력에서 2년 이상 앞서 있는 만큼 2028~2029년에도 첨단 공정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73%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고 삼성전자가 7%로 뒤를 이었다. 인텔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해 수율 개선과 고객 기반 확대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인텔도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 체제에서 파운드리 사업 재건에 나서며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시스코 등을 고객으로 확보, 구글의 차세대 TPU 생산 참여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과 SK온 대표를 지낸 이석희 전 사장을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 수석부사장은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보고하며 첨단 패키징·시스템 통합·후공정 기술을 총괄한다. 

앞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영업을 이끌었던 한승훈 전 부사장도 파운드리 영업 총괄로 발탁했다. 첨단 패키징이 AI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자 인텔 역시 한국 반도체 인재를 앞세워 파운드리와 후공정 역량 강화에 나섰다는 평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의 인텔은 과거의 CPU 기업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와 제조업 부활을 위해 직접 키우는 전략기업"이라며 "애플과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협력 확대도 단순 공급망 다변화가 아니라 미국의 온쇼어링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인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인텔의 재부상을 본격적으로 경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과 SK하이닉스 출신 핵심 인재를 잇달아 영입한 것은 단순한 인재 확보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양산 기술·공정 관리 역량·고객 대응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하려는 전략"이라며 "한국 반도체의 성공 DNA를 이식해 인텔의 추격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변수"라고 진단했다. [下편에서 계속]

미국 반도체 주요 기업 연간 R&D 비용 지출 추이./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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