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폭등에 힘입어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S-OIL)·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이 15조원에 육박하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다만 하반기 전망은 안갯속이다. 지난해 합산 1조원대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 대규모 실적 반등을 이뤄냈지만 3분기 이후 일회성 재고이익 소멸과 함께 최고가격제 손실보전·물류비 가중이라는 3중고가 예견돼 안도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실 털어내고 줄줄이 흑자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상반기 합산 매출은 120조6345억원, 영업이익은 14조790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1조1418억원의 합산 영업손실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대규모 흑자로 돌아선 것. 올해 2분기 합산 영업이익만 8조8271억원에 달해 직전 분기(5조9635억원) 대비 48% 이상 증가했다.
기업별로는 SK이노베이션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5조6495억원을 거두며 정유 4사 중 가장 많은 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29조1572억원, 영업이익은 3조4873억원이다. GS칼텍스는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4조1874억원을 올리며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을 대폭 끌어올렸다. 2분기 매출은 16조6724억원, 영업이익은 2조5507억원을 기록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2조7576억원을 거뒀다. 2분기 매출은 9조4774억원, 영업이익은 1조8241억원을 올렸으며 에쓰오일은 상반기 누적 매출 20조2862억원, 영업이익 2조1961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는 매출 11조3435억원, 영업이익 9650억원을 보였다.
상반기 실적 개선을 이끈 주된 동력은 중동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제품 마진 폭등과 원유 도입 시차에 따른 재고 평가이익이다.
지난 2월 말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두바이유가 배럴당 120달러선까지 급등한 영향이 컸다. 핵심 수익성 지표인 복합정제마진은 2분기 배럴당 평균 24.7달러로, 손익분기점(4~5달러)을 5배가량 뛰어넘었다. 여기에 저가에 들여온 원유가 시차를 두고 원가에 반영되는 래깅효과(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가 정유 부문 손익을 끌어올렸다.
고성능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 사업도 효자 역할을 해냈다. 전쟁 여파로 중동 지역 생산 차질과 물류 제약으로 글로벌 고급 윤활기유(Group III·그룹 3) 공급의 30%가량이 줄어들면서 제품 스프레드가 배럴당 130~160달러선까지 폭등한 것.
실제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인 SK엔무브의 경우 2분기 영업이익 6919억원을 거뒀다. 에쓰오일 윤활부문도 4774억원,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도 각각 3577억원, 1814억원을 이익을 내며 정유사 4곳 모두 윤활유 사업에서 고마진 특수를 누렸다.
반면 석유화학 부문은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분을 제품가에 반영하지 못해 GS칼텍스(-63억원)와 에쓰오일(-448억원)이 적자로 돌아서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원가·정책 복병 도사린다
상반기 톡톡한 호실적을 누렸으나 3분기 이후 업황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증산과 역내 설비 가동률 상승으로 유가와 정제마진 상승세가 완화되면 재고 관련 이익이 소멸하면서 수익성이 둔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책과 물류 변수로 인한 부담도 상존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 손실보전과 관련해 정부 추산액(5000억~6000억원)과 업계 추산 손실액(7~8조원) 간 격차가 커 정산 과정에서 진통이 예견된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주와 아프리카산 원유 도입 비중을 늘렸으나 긴 운송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통상 20~25일이 소요되던 중동 항로와 달리 미국 걸프만에서 원유를 들여올 경우 운송 기간만 약 40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용선료와 연료비 등 물류비 부담이 가중된 데다 중동 원유에 최적화된 정제설비의 생산 효율성 최적화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의 석유수입부과금 운임 지원이 지난 6월 말로 종료된 점 역시 향후 정유업계의 비용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역시 지정학적 변수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지속되는 데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로 비용 부담이 가중된 상태"라며 "안정적인 원유 조달을 위한 지원책 마련과 함께 주요 현안에 차분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