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엔비디아와 손잡고 연내 휴머노이드 로봇 학습용 데이터 10만시간을 확보한다.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2년치에 달하는 분량이다. 수십 년간 제조·물류 현장에서 축적한 작업 데이터를 엔비디아의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술로 확장해 로봇의 '두뇌'를 고도화한다는 구상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에서 로봇 협력을 공식화한 지 나흘 만에 사업화에도 본격 시동을 걸었다.
美서 손잡고 양재로…로봇 사업 본격화
LG전자는 18일 서울 서초구 옛 양재R&D캠퍼스에 구축 중인 'LG 데이터팩토리'에서 엔비디아 핵심 관계자들과 로보틱스 분야 협업 방향과 사업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류재철 LG전자 CEO·현신균 LG CNS CEO·정수헌 LG사이언스파크 대표 등 LG그룹 주요 경영진이 참석했다. 엔비디아에서는 젠슨 황 CEO의 장녀인 매디슨 황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이사 등이 자리했다.
이번 회동은 양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체결한 미래 전략사업 협력 업무협약의 후속 행보다. 당시 양측은 로봇·AI 팩토리·모빌리티 등 미래 사업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MOU 체결 나흘 만에 로봇 데이터 생산 현장에서 다시 만나면서 양사의 협력도 선언적 제휴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양사 로봇 협력의 핵심 거점은 연내 완전 가동을 목표로 조성 중인 양재 데이터팩토리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4개 층, 연면적 1만㎡ 규모로 들어선다. 실제 가정과 제조·물류 환경을 구현해 로봇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며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를 검증·정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LG전자가 자체 제작·검증한 휴머노이드 로봇 'LG 클로이드(CLOiD)'가 투입돼 있다. 가정 환경에서는 청소를, 미국 테네시 세탁기 공정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부품을 옮겨 적재하거나 조립한다. LG CNS의 물류 자동화 솔루션과 LG이노텍의 로봇 손 학습 공간도 데이터 수집에 활용된다. LG전자는 연말까지 투입 로봇을 수백 대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전자의 강점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다. 전 세계 제조·물류 현장에서 수십 년간 쌓은 작업 데이터는 물론 숙련공의 노하우까지 로봇의 '교재'로 활용한다. 현장에서 검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정이나 공장처럼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 필요한 동작과 판단 능력을 학습시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접목해 학습 데이터의 양과 다양성을 대폭 확장한다.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 △월드 모델 '코스모스' △로봇 개발·훈련 플랫폼 '아이작' 등을 통해 현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증강·합성하는 방식이다. 공장이나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가상으로 구현해 로봇을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학습 데이터를 빠르게 늘릴 수 있다.
실제·가상 데이터 10만시간…햇수로 약 12년치
LG전자는 이를 통해 올해 말까지 직접 수집한 데이터와 증폭·합성한 가상 데이터를 합쳐 총 10만시간의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2년치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는 휴머노이드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고도화에 활용한다.
RFM은 로봇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춰 판단·행동하도록 하는 범용 AI 모델이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가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람의 지시를 이해하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려면 방대한 학습 데이터가 필요하다. 로봇 경쟁력이 하드웨어 성능을 넘어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해 학습시키느냐에 달린 이유다.
LG전자는 이를 토대로 '데이터 플라이휠'도 구축한다. 현장에서 모은 데이터를 학습해 로봇 성능을 높이고 개선된 로봇이 다시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는 선순환 구조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 기술을 결합해 데이터의 양과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그룹 계열사의 역량도 결집한다. LG전자의 로봇·가전 및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LG CNS의 물류 자동화, LG이노텍의 부품 기술 등을 연계하는 '원 LG' 전략이다. 로봇 하드웨어부터 제조·물류 현장, 데이터 학습까지 그룹이 보유한 자산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겠다는 구상이다.
LG전자는 올해를 로보틱스 사업 도약의 원년으로 정하고 조직과 사업 기반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CEO 직속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해 전사 로봇 사업을 한데 모았다. 산업용·상업용에서 가정용으로 제품군을 넓히는 동시에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 역량도 키우고 있다.
최종 목표는 부품·완제품·AI 모델·학습 데이터까지 아우르는 '로보틱스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다. 자체 제조·물류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에 엔비디아의 AI·시뮬레이션 기술을 결합해 피지컬 AI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류재철 LG전자 CEO는 "그룹 내 핵심 역량을 결집하는 '원 LG' 기반의 시너지와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피지컬 AI 경쟁력을 확보하고 로보틱스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매디슨 황 수석이사는 이날 약 2시간30분 동안 양재 데이터팩토리를 둘러본 뒤 취재진에게 "대단했다(Incredible)"고 소감을 밝혔다.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됐던 방문은 30분가량 길어졌다. 건물을 나선 황 수석이사는 취재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