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가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에 대응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생산 라인을 전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우주항공 등 차세대 고부가 시장을 겨냥한 전고체 배터리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3사는 피지컬 AI(물리적 인공지능) 확산에 발맞춰 휴머노이드 로봇과 우주항공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시장 공략을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복잡한 관절 부위를 움직이며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전력을 소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액체 전해질 대신 전고체 배터리가 최적의 동력원으로 꼽힌다. 불연성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위험이 낮고 에너지 밀도는 높아서다.
로봇 완제품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5~10% 수준이지만 산업용과 가정용 수요가 늘어나며 로봇 배터리 시장은 2030년까지 매년 2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SDI는 올 하반기 휴머노이드 고객사에 샘플을 전달하고 검증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지난달 말 열린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조한제 삼성SDI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최근 휴머노이드 고객과 협력 논의를 구체화하는 단계로, 하반기 중 휴머노이드용 샘플을 공급할 것"이라며 "이후 고객사와 제품 검증을 거쳐 양산 준비를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휴머노이드용 양산 역량을 확보한 뒤 전기차 등으로 전고체 배터리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삼성SDI는 전고체 조기 상용화와 함께 고출력 원통형 배터리 생산능력을 늘려 로봇과 우주항공 시장 수요에 입체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글로벌 로봇 제조사 공급망 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피규어AI, 보스턴다이나믹스, 테슬라 및 중국 유니트리 등과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제품 승인을 마쳤거나 초도 물량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과 초소형 위성 등 특수 모빌리티 분야 공급도 병행한다.
SK온은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대전 연구원 파일럿 라인에서 고분자-산화물 복합계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동시 개발하고 있다. 고밀도 배터리 기술을 확보해 향후 로봇과 항공 등 특수 시장에 순차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3사가 중장기적으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전기차 수요 공백을 메우기 위한 ESS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와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올 상반기 ESS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배 늘었다. 상반기 글로벌 ESS 출하량12GWh(기가와트시) 가운데 약 86%가 북미에서 발생했으며 북미 출하량의 95%는 전력망용으로 집계됐다. 회사는 지난 5~6월 가동을 시작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합작 2공장과 혼다 합작법인 내 라인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북미 지역 ESS 생산능력을 50GWh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통상 하반기에 출하가 집중되는 계절성을 고려하면 연간 북미 ESS 배터리 출하량이 150GWh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온은 전기차에 쏠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하반기 충남 서산공장과 미국 공장의 전기차용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해 연내 20GWh 규모의 전 세계 수주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월 국내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에서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284MW)을 확보한 데 이어 북미 시장 수주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오는 10월부터 미국 시장을 겨냥한 ESS용 각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해 연내 공급을 시작한다. AI 데이터센터용 무정전전원장치(UPS)와 배터리백업유닛(BBU) 시장에서 과반의 점유율을 확보한 가운데 올해 관련 매출은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최근 삼성SDI는 보유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일부를 매각해 4조4500억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등 북미 ESS 생산거점 증설에 실탄을 쌓고 있다.
김영진 핀릿 연구위원은 "AI 서버 전력난은 ESS와 BBU 수요를 키워 배터리 기업이 전기차 의존도를 낮추고 이익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변수"라며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가볍고 화재에 강한 배터리가 필수인 만큼 전고체 등 차세대 기술이 피지컬 AI 시대 전원 플랫폼이자 로봇 밸류체인의 출발점으로 재평가받는 성장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