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산업계는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호황이 성적표를 갈랐다. 메모리 반도체가 기록적인 이익을 낸 가운데 조선·방산도 수주 호조와 수익성 개선으로 힘을 보탰다. 긴 부진을 겪던 배터리 3사 역시 2분기를 기점으로 반등 조짐을 보이며 저점 통과 기대를 키웠다. 비즈워치는 반기보고서를 토대로 삼성·SK·현대자동차·LG·포스코 등 5개 그룹의 상반기 성적표와 업종별 명암을 심층 분석했다.[편집자]
SK그룹의 올해 상반기 성적표는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반도체와 대규모 흑자 전환에 성공한 정유·배터리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호황을 등에 업은 SK하이닉스가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7할 이상을 책임졌고 자회사 지분법 이익이 반영된 SK스퀘어까지 더하면 반도체 관련 이익 비중은 95%에 달했다. 여기에 지난해 적자에 허덕이던 SK이노베이션이 5조원대 영업이익으로 완벽히 돌아서며 그룹의 전체 이익 체력을 대폭 확대시켰다.
HBM 타고 '98조' 신기원
26일 비즈워치가 분석한 SK그룹 비금융 주요 계열사 10곳(SK하이닉스·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가스·SK네트웍스·SK케미칼·SKC·SK스퀘어·SK디앤디·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은 132조443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20조2722억원보다 무려 553.3% 급증한 수치다.
실적 폭증의 근원지는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매출 131조8950억원, 영업이익 98조152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230.8%, 영업이익은 489.4% 늘어났다. 반기 매출이 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74.4%에 달해 1년 만에 32.6%포인트(p) 치솟았다. 10개 계열사 합산 매출의 64.1%, 전체 영업이익의 74.1%를 SK하이닉스 홀로 벌어들인 것이다.
2분기 실적만 떼어놓고 보면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올해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거두며 영업이익률 76%를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갈아치웠다.
실적 성장 배경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서버용 고부가가치 메모리 수요가 폭증한 영향 덕이다. 2분기 D램 평균판매단가(ASP)는 전분기 대비 약 30%, 낸드플래시 ASP는 50% 중반대 급등했다. 5세대 제품인 HBM3E 공급을 지속하는 가운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 양산 출하를 2분기에 개시했다. 차세대 HBM4E 역시 주요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마쳤다.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저장장치인 기업용 SSD(eSSD)와 321단 낸드 판매가 빠르게 늘어난 점도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는 321단 낸드 생산 비중을 연말까지 국내 생산능력의 50%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요 안정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급 계약 구조도 고도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개 고객사와 다년 단위 장기공급계약 협상을 마무리했다.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청주 M15X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내년 초 용인 1기 팹 가동 준비에 속도를 내는 등 올해 설비투자에 40조원 후반대를 집행할 방침이다. 막대한 현금 창출력에 힘입어 2분기 말 기준 순현금은 69조4000억원으로 늘어났다.
SK하이닉스의 독주는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의 실적으로 직결됐다. SK스퀘어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27조51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0.8% 뛰었다. 영업이익률은 4374.9%를 기록했다. 지분을 보유한 SK하이닉스의 2분기 당기순이익(93조9226억원) 등 순이익이 지분법 이익으로 대거 잡힌 결과다.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 두 곳의 상반기 영업이익 합산액만 125조6665억원으로, 10개사 전체 영업이익의 94.9%를 차지한다.
ICT 주력사인 SK텔레콤도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상반기 매출은 8조7514억원으로 1년 전보다 0.5% 소폭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1조1036억원으로 21.9% 증가했다.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영업이익률은 10.3%에서 12.6%로 2.3%p 개선됐다.
정유·배터리 '턴어라운드'
그룹의 중화학 축을 담당하는 에너지 부문은 적자 늪을 빠져나와 확실한 반등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은 상반기 매출 53조4482억원, 영업이익 5조649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5%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1년 전 4323억원 적자에서 대규모 흑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률도 -1.1%에서 10.6%로 11.6%p 반등하며 두 자릿수에 안착했다.
이익 반등은 윤활유와 정유 사업이 이끌었다.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올해 초부터 이어진 중동발 공급 차질 속에서 프리미엄 윤활기유(그룹 Ⅲ) 마진이 상승한 덕에 2분기 영업이익 6919억원을 기록해 전분기보다 5034억원 증가했다. 정유 사업을 영위하는 SK에너지는 4~5월 유가 상승에 따른 정제마진과 재고 관련 이익이 반영되며 2분기 영업이익 6512억원을 거뒀다. SK이노베이션 E&S도 발전소 정비 등 계절적 비수기 영향 속에서 1059억원의 영업이익을 보탰다.
배터리 사업의 경우 7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으나 내실을 뜯어보면 온전한 회복으로 보기는 어렵다.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2분기 영업이익 8218억원을 기록하며 직전 분기(-1452억원) 대비 대규모 흑자를 냈다. 다만 실적의 상당 부분은 일회성·비경상 수익에 기댄 결과다. 반기보고서상 영업이익에 반영된 고객사 보상금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파생상품 관련 이익 등 기타 원천 수익만 1조332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 목표 미달에 따른 일회성 보상금과 정책 지원금을 제외하면 배터리 본업에서는 사실상 5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낸 셈이다. 포드와의 합작법인을 종료하고 단독 공장 체제로 전환해 고정비를 줄이고 있으나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주 확대 등을 통해 보조금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SK가스는 트레이딩 사업 변동성 속에서도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상반기 매출은 4조94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5%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837억원으로 21.4%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6.3%에서 3.7%로 2.6%p 낮아졌다.
SK네트웍스는 사업 재편 기조 아래 내실 위주의 경영을 이어갔다. 상반기 매출 3조1879억원, 영업이익 581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영업이익률은 1.8%로 집계됐다.
SK케미칼은 상반기 매출 1조4010억원으로 23.6% 성장했으나 영업이익은 135억원으로 42.1% 줄며 영업이익률이 2.1%에서 1.0%로 1.1%p 하락했다.
명암 갈린 비반도체…SKIET, 5년 만에 사업 원점으로
반면 배터리 소재와 부동산 개발 계열사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화학·소재 계열사 SKC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14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2% 늘었고 영업손실 431억원을 기록해 1년 만에 적자 폭을 994억원 줄였다. 영업이익률은 12%p 개선됐으나 흑자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다.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는 SK디앤디는 개발 프로젝트 지연 영향으로 실적이 급감했다. 상반기 매출은 1544억원으로 32.3% 줄었고 영업손익은 지난해 상반기 407억원 흑자에서 올해 522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률도 17.8%에서 -33.8%로 51.6%p 급락했다.
가장 뼈아픈 곳은 배터리 분리막 제조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다. SKIET의 상반기 매출 7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5%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1366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더 확대됐다. 영업이익률은 -181.2%까지 추락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와 중국 경쟁사들의 저가 공세가 겹치며 공장 가동률이 급락한 탓이다.
실적 악화가 지속되자 SK그룹은 분사 5년 만에 사업 구조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단을 내렸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 SKIET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의했다. 합병비율은 1대 0.1174540으로 SKIET 보통주 1주당 SK이노베이션 보통주 0.11주가 배정된다. 합병기일은 내년 1월1일이다.
2019년 물적분할을 거쳐 2021년 코스피에 상장했던 SKIET는 상장사 지위를 내려놓고 모회사 사업부로 편입된다. SK이노베이션은 중복 비용을 줄이고 재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으나 장기간 적자에 시달리던 분리막 법인의 독자 생존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지지 않는 소규모 합병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합병 비율을 둘러싼 일반 주주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한편 주요 10개 계열사의 올해 상반기 합산 매출은 205조6325억원으로 1년 만에 107.1% 늘어 200조원대에 진입했다.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두 회사의 매출 합계만 185조3432억원으로 전체의 90.1%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