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생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6세대 HBM4를 양산 중인 만큼 제품 세대를 기준으로는 한 단계 차이까지 좁힌 셈이다. 범용 D램에 이어 AI 가속기의 핵심인 HBM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빨라지면서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기술 격차 유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내수 등에 업은 CXMT
2일 외신 등에 따르면, CXMT는 최근 HBM3E를 소량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내년부터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메모리로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T헤드와 AI 반도체 업체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 등은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에 CXMT의 HBM3E를 탑재해 성능 검증을 진행 중이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이르면 내년부터 CXMT HBM3E를 적용한 중국산 AI 반도체가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CXMT가 올해 HBM3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 세대 앞선 HBM3E까지 개발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선두 업체들을 따라붙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CXMT가 계획대로 내년 HBM3E 양산을 본격화하면 2024년 양산을 시작한 SK하이닉스와는 시점상 약 3년의 격차가 난다.
중국 AI 반도체 업체들의 자국산 제품 채택이 늘면 기술 추격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수 있다. HBM은 제품 개발뿐 아니라 고객사 검증과 실제 양산 과정에서 수율과 성능을 끌어올리는 경험이 중요하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첨단 AI 반도체 및 HBM 조달에 제약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CXMT 제품을 적극 채택하면 안정적인 수요 기반이 만들어진다. CXMT로서는 이를 바탕으로 양산 노하우와 고객 피드백을 축적하며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업계에서도 중국 팹리스의 주문이 CXMT의 HBM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확산으로 HBM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중국 업체까지 첨단 제품 시장에 진입, 자국 반도체 생태계의 자립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CXMT는 HBM을 넘어 고부가 메모리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차세대 저전력 D램인 LPDDR6 생산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PC·서버용 범용 D램 중심이던 사업을 모바일과 AI용 메모리까지 확장하는 모습이다.
다만 제품 세대가 한 단계 차이로 좁혀졌다고 실제 기술 격차도 그만큼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CXMT는 여전히 HBM 수율·속도·신뢰성 등에서 선두 업체에 뒤처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CXMT의 HBM 제조 기술이 글로벌 선두 업체보다 3~5년가량 뒤처져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기도 하다.
T헤드와 캠브리콘도 CXMT HBM3E의 성능과 신뢰성이 글로벌 메모리 3사 제품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 자체 프로세서와의 호환성을 높이는 최적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양산 경쟁력은 아직 숙제"
전문가들도 CXMT의 기술 추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HBM 기술 격차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며 "HBM3E까지 올라왔다면 예상보다 추격 속도가 빠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시장에서 CXMT의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향 매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소량 생산을 곧바로 대량 양산 능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HBM은 제품 개발 이후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고 고객사 검증을 거쳐야 실제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원은 "제품 개발에 성공해 시험 생산을 하는 것과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 시장에 판매할 수준으로 대량 양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CXMT가 HBM3E까지 개발하면서 기술 격차가 좁혀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곧바로 시장 경쟁력의 격차 축소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시장이 일정 부분 나뉘어 있다는 점도 변수다. CXMT는 엔비디아 등 미국 AI 반도체 업체에 HBM을 공급하는 데 제약이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고부가 시장을 당장 잠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CXMT가 국내 업체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도 미국 시장에 판매하기 어려운 만큼 당장 국내 업체의 주력 시장을 위협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HBM 시장에서는 기존 글로벌 공급업체의 물량을 CXMT가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업체로서는 중국의 추격보다 한발 앞서 다음 기술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HBM 세대 전환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적층 구조와 양산 효율을 개선하고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까지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HBM의 적층 단수를 높이고 구조 개선을 통해 효율과 양산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며 "AI 시장의 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대되는 만큼 플래시메모리를 고대역폭화한 HBF 같은 차세대 제품의 시장성도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는 기술 경쟁인 동시에 물량 경쟁인 만큼 필요한 투자도 함께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中 따돌릴 다음 승부처는?
한편 선두 업체들은 이미 한발 앞선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HBM3E 양산을 시작,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현재 6세대 HBM4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한 7세대 HBM4E 개발 경쟁도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메모리를 수직으로 확장하는 3D 기술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세미콘 타이완 2026'에서 용량·대역폭·전력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CUBE' 전략을 공개했다.
CUBE는 용량(Capacity), 최적화(Utilization), 대역폭(Bandwidth), 전력 효율(Efficiency)의 앞글자를 딴 개념이다. 단순히 메모리를 높게 쌓는 데 그치지 않고 로직과 메모리의 배치를 최적화해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이고 전력 효율까지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3D 기술이 부상하는 것은 미세공정만으로 AI 시대가 요구하는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폭을 줄이는 경쟁에 더해 메모리와 로직을 얼마나 촘촘하게 쌓고 연결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HBM 역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한 대표적인 3D 반도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도 같은 행사에서 3D 반도체와 실리콘 포토닉스를 핵심 기술로 제시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전기 신호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아 전송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기술이다.
TSMC는 3D 적층과 첨단 패키징, 실리콘 포토닉스를 결합해 오는 2029년 AI 시스템의 연산 성능을 2024년보다 최대 50배 높인다는 목표를 내놨다. 실리콘 포토닉스를 패키지 내부에 적용하는 공동광학패키지(CPO)도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