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풍력 발전기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물과 전기는 상극이라는데 거대한 날개를 돌려 만든 전기는 어떻게 바닷속을 건너 육지까지 도달하는걸까요?
비결은 해저 깊은 곳에 묻힌 특수 케이블에 있습니다. 바다 위 전력을 육지까지 온전히 실어나르는 에너지 고속도로,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의 원리를 살펴봤습니다.
직류의 시대
육상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전기는 대부분 교류(AC)입니다. 변압기를 이용해 전압을 손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어 장거리 송전에 유리한 장점이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만 볼트로 높여 도시 근처까지 보낸 뒤 가정용 220V로 낮추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바닷속에 전선을 깔 때는 사정이 180도 달라집니다. 바다 밑바닥에 교류 케이블을 설치하면 물과 도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전용량(충전용량)이 복병으로 작용하는데요.
구리 도선을 감싼 두꺼운 절연체와 그 바깥을 둘러싼 차가운 바닷물이 거대한 축전기 역할을 하면서 전기가 육지로 가기도 전에 케이블 자체를 충전하는 데 에너지를 빼앗기게 됩니다. 송전 거리가 40~50km를 넘어가면 전력 손실도 커지면서 육지에 도달했을 때는 정작 쓸 수 있는 전기가 거의 남지 않게 되죠.
이 한계를 뚫어낸 기술이 바로 초고압직류송전(HVDC)입니다. 직류는 전압과 전류의 방향이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주파수(Hz)가 없습니다. 주파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정전용량 손실이나 무효전력 손실 자체가 원천 차단되는 구조입니다.
해상 변전소에서 풍력 터빈이 생산한 교류 전력을 직류로 변환해 바닷속을 건너게 한 뒤 육상 변전소에서 다시 교류로 바꿔 도심에 공급하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먼바다에서도 전력을 거의 손실 없이 끌고 올 수 있습니다.
'10도' 올려 푼 전력 난제
글로벌 에너지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HVDC 시장은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2018년 1조8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글로벌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4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기술 진입장벽은 극도로 높습니다. 수백 킬로미터 바닷속 극한 환경을 견뎌야 하는 500킬로볼트(kV)급 이상 초고압 케이블을 실제 전력망에 공급해 상용화까지 이뤄낸 기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6곳에 불과합니다.
1950년대에 뛰어든 유럽이나 1990년대의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출발은 늦었습니다. 국내에서는 LS전선이 2008년에야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했지만 10여 년 만에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500kV급 HVDC 상용화 실적을 확보한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후발주자였던 LS전선이 선도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힌 열쇠는 열(Heat) 기술입니다. 먼바다로 나갈수록 해상풍력 발전 용량은 수 기가와트(GW)급으로 불어납니다. 대용량 전력을 한 번에 실어나르려면 도체를 굵게 만들어야 하지만 바닷속에 깔아야 하는 케이블의 굵기와 무게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습니다. 배에 싣거나 해저 바닥에 묻는 작업 자체가 불가해지기 때문입니다.
전선에 전류를 많이 흘려보낼수록 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는데, 기존 해저케이블 절연체는 안전을 위해 도체 온도를 70℃ 안팎으로만 버티도록 설계됐습니다. LS전선이 개발한 525kV·80℃급 케이블은 고분자 절연 재료 기술을 개선해 이 한계 온도를 80℃로 10℃ 높였습니다.
버틸 수 있는 온도가 10℃ 오르자 케이블 굵기를 키우지 않고도 흘려보낼 수 있는 전류량이 대폭 늘어나 송전 용량이 최대 25%까지 뛰었습니다. 케이블 한 쌍만으로 대형 원자력 발전소 1~2기 분량의 대규모 전력을 실어나를 수 있는 셈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케이블을 만들어도 바닷속에 온전히 묻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해저케이블 시공의 성패는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단일 케이블을 중간 연결 없이 바다 밑바닥에 매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수심 수백 미터의 해저는 강한 수압과 조류, 어선 닻 끌림 위험이 상존합니다. 케이블을 중간에 이어 붙인 접합부는 외압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제조 단계부터 이음매 없는 '단일 연속선'으로 생산해 통째로 깔아야 안전합니다.
문제는 무게입니다. 이음매 없이 길게 뽑아낸 단일 초고압 케이블은 무게만 수천에서 수만 톤에 달합니다. 이를 싣고 바다로 나가 정밀하게 해저 바닥을 파내 묻으려면 1만 톤급 이상의 대형 해저케이블 포설선(CLV)이 필수적인데, 이 특수 선박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품귀를 겪고 있습니다. 초대형 풍력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데 반해 건조 비용이 수천억 원에 달하고 건조 기간도 수년씩 걸려 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응해 LS전선은 자회사 LS마린솔루션과 손잡고 제조부터 시공까지 하나로 묶는 턴키(일괄 수주)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케이블을 만든 제조사가 전용 포설선을 앞세워 시공과 유지보수까지 직접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선박 부족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은 네덜란드 국영 전력회사 테넷(TenneT) 등 까다로운 유럽 시장에서 초대형 수주를 따낸 결정적 비결이 됐습니다.
해상풍력의 무대는 연안을 넘어 먼바다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수압을 이겨내고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전력을 실어나르는 HVDC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 발전기의 거대한 날개를 돌리는 것 못지않게 탄소중립 시대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