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증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자본시장으로 집중되는 정보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공시와 재무데이터는 40만건에 달하고,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에서는 상장기업 관련 공시만 하루 1000건 이상이 생산된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자본시장 관련 뉴스와 콘텐츠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다.
시장 전체를 총괄 관리하고 감시자의 역할도 해야 하는 한국거래소는 이 모든 데이터를 최대한 수집하고 활용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 활용에 따른 판단에 한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시장의 일부 혹은 시장 전체에 치명적인 손실을 안길 수 있는 구조다.
지난 2월 한국거래소가 역사상 처음으로 인수한 기업이 인공지능(AI) 데이터분석 스타트업 '페어랩스'인 이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국거래소는 페어랩스 인수를 통해 시장업무 자동화를 구축하고, 기업공시 및 시장감시 등 시장관리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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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후 넉달, 페어랩스는 한국거래소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을까. 비즈워치가 손종진 페어랩스 대표를 만나봤다.
AX, 자본시장 높은 생산성 가져다 줄 것
손 대표는 한국거래소 업무의 인공지능 전환(AX)이 자본시장에 상당히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손 대표는 "AX는 내부에 얼마나 페인포인트(Pain Point)가 있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다르지만, 특히 금융산업은 데이터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처리분석을 자동화하는 AI를 도입하면 상당히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거래소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특정 프로젝트를 최우선에 두고 있지 않고, AI분야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시로 양방향 소통을 하고 제안과 협의를 한다"면서 우선 '인덱스 지수사업'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인프라의 AX, 혁신과 안정 모두 갖춰야
손 대표는 거래소라는 공공인프라 사업에 참여한 만큼 "공공성과 사업성, 혁신성과 안정성 모두를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공공인프라 사업에서는 혁신성과 함께 안정성이 중요한 가치"라며 "빠르게 실험하는 에자일한 방향이다보니 혁신과 안정이 충돌할 때가 많은데, (페어랩스가) 독립된 환경에서 충분히 테스트하고 안정성이 담보됐을 때 한국거래소의 인프라에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손종진(사진) 페어랩스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페어랩스는 어떤 곳인가
△ 인공지능 기반의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한다. 페어랩스(FairLabs)는 'Future AI Research Labs'의 줄임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인공지능 연구소라는 뜻을 담았다. 2014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는 ESG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연구과정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이 데이터였다.
뉴스나 기업의 지속가능성보고서, 공시자료들을 수작업으로 추출한 다음 ESG 의사결정 평가에 사용하려니 2년 정도가 걸렸다. 2020년부터 ESG 붐이 불면서 데이터로 투자활동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2년 전 데이터로 투자할 순 없고, 적시성과 정합성을 담보할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AI를 만들게 됐다.
ESG가 가지고 있는 함의처럼 AI가 사람을 대체하고 파괴적인 게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소 개념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 거래소와의 접점이 생긴 계기는
▲ 스타트업에서도 다양하게 대외활동을 했지만 사실 거래소가 어떤 경로로 우리를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적인 역량보다는 AI와 데이터 기술을 산업과 공공의 영역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우리의 ESG분야 운영 경험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다. 사실 기술만 있는 스타트업이 공공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B2G 사업을 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는 혁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현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질감과 괴리도 함께 안고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기존 금융기관이 내부에서 직접 개발하면 혁신성과 속도가 느리고, 외부와 협력하면 내부 데이터 공유가 어렵거나 실무 협업이 어려운 점이 있다.
반대로 스타트업은 혁신적인 아이템을 고민하지만, 실수요와 적합성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시장에 불필요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번 M&A를 통해서 혁신성과 기존 기관의 필요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았고, 그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거래소 사업에 참여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사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이다. 공공 인프라 사업은 말 그대로 사업 자체가 공공성을 지닌다. 그래서 사업적으로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공공 영역에서 효과가 크고 문제를 인공지능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사업을 주력으로 검토한다. 단순한 사업성을 넘어 공공성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고민이다.
둘째는 혁신성과 안정성의 결합이다. 스타트업 관점에서 혁신적인 아이템을 개발할 때는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일단 시장에 내놓고 반응과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 제품을 고쳐 나가는 애자일 방법론이 중요하다. 반면 공공 인프라 사업은 안정성을 요구한다. 혁신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내더라도 공공 인프라에 도입되기 전에는 그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프라를 함께 갖추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이다. 한쪽이 빠른 속도와 시장 검증을 지향한다면, 다른 한쪽은 안정성과 정확성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도전이다.
거래소는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실수와 실패할 수 있는 경험을 특화받았다고 본다. 우리가 독립된 환경에서 충분히 테스트하고 안정성이 담보됐을 때 한국거래소의 인프라에 도입될 것이다.
- 시장 모니터에 AI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 기존에는 뉴스를 사람이 검색해서 찾아보거나 공시자료도 수작업에 메뉴얼 프로세스가 인력기반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갖고 있는 자료들도 담당자가 바뀌면 변형되기도 하고, 히스토리가 날아가는 취약점도 생긴다. 뉴스와 공시 프로젝트들이 담당자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리스크는 줄이고, 거래소는 의사결정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워크프로세스를 만드는 역할을 진행중에 있다.
현재는 PoC(개념증명) 단계에 있다. 스타트업 솔루션을 바로 거래소에 정착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개발 내용이 얼마나 현업에게 정확히 사용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과정에 있다. 올 하반기까지 PoC 진행을 하고, 현업에서 얼마나 안정성 있고 효율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다.

- AI를 활용하더라도 인간의 '판단'은 필요해 보인다
▲ 인간의 의사결정과 AI의 역할에 대해서는 각 단계를 최대한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어 사람이 반드시 판단해야 하는 영역을 거래소와 함께 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업무가 1부터 10까지의 단계로 이뤄진다면, 이 전부를 AI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단계의 범위와 권한을 나누어 설정하고 협의해 워크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AI는 기존 수작업 기반 업무 프로세스를 AI 기반 프로세스로 전환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사람이 최종적이고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데이터와 AI에 대한 거버넌스 체계를 반드시 함께 고민하여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 방대한 금융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보안도 중요한데
△ 데이터 거버넌스는 AI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AI를 활용한다기보다는 안전하게 활용하는 체계가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다. 특히 금융산업에서 보안과 프라이버시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비정형 데이터에 주목한다. 한국거래소가 이미 보유한 정형화된 금융 데이터의 보안·프라이버시·거버넌스 자체보다는, 그동안 데이터로 적재되어 있었으나 활용하기 어려웠던 공시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활용하는 데이터 사업과 인덱스 사업을 고민하고 추진하고 있다.
기존 금융 데이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보안·프라이버시·데이터 거버넌스에서 요구되는 제도와 정책을 최대한 준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앞으로 비정형 데이터를 자체 사업에 활용하는 과정에서도 거버넌스가 필요한데, 이 부분도 한국거래소와 협의해 안전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 연장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중이다.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 AI로 전환하면 자연스럽게 절대적 업무부담이 줄고, 따라서 거래시간 연장에서도 효율성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3월에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들이 단기간에 쏟아지는데 이건 것에 대해 단시간에 의사결정을 하다보면 에러가 생길 수 있다. 이걸 리스크라고 본다면 AI는 인간과 함께 쏟아지는 자료들을 스크리닝해서 인간이 실수할 수 있는 영역을 교차검증하거나 AI가 먼저 검증해서 에러를 잡아주는 사실상 새로운 어시스턴트가 될 것이다.
특정 프로젝트를 최우선에 두고 있지 않고, AI분야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시로 양방향 소통을 하고 제안과 협의를 한다.
'인덱스 지수'사업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산업 분류체계를 AI로 자동분류하고, 적시에 국내 산업의 변화를 포착해서 지수를 보다 정확히 개발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우리 공시자료들이 글로벌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데이터프로파일러들에게는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라고 들었다. 그런 부분 정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진행중이다.
공시 모니터링에서도 가장 주력하는 것은 데이터 파운드리를 만드는 것이다. 공시 자료들이 PDF, HTML과 같은 것이 아니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뉴스 모니터링 역시 어떤 의사결정을 필요로 할 때 적시에 지원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 거래소 효율화가 성공하면 자본시장에서의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을까
△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고자 한다. 정보가 더 투명해지고, 더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앞으로는 재무 정보뿐 아니라 기업의 비재무 정보, 각종 공시 자료, 보고서, 뉴스까지 AI가 함께 활용해 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앞으로 공공 영역에서 투명한 정보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싶다.
이미 모든 데이터를 AI가 직접 접근하고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모든 정보를 AI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로 갖추는 것,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 될 거라고 본다. AI 시대에 금융시장이 필요로 하는 비정형데이터 분석 인프라를 준비해 미래 지향적인 사업을 발굴하고 개척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