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의 '구원투수'로 낙점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실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임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비해 뚜렷한 정책 소신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청문회에 임했다. 향후 경제경책의 실질적 콘트롤타워가 바로 본인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8일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최 후보자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했다. 여당에서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최 후보자를 예우하면서 경제 활력을 되살릴 정책 검증에 집중한 반면, 야당 의원들은 세입 부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최 후보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부동산 규제 완화, 금리, 환율 등 현안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경제부총리에 정식 취임하면 이른 시일 내에 경제 활력을 위한 정책 패키지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인상은 '불가', 담배 세금은 '강화', 부동산 규제는 '완화' 등 현안 별로 확실한 색깔도 드러냈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경제정책의 청사진과 각종 의혹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봤다.
▲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최경환 후보자가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경제 살리기'…추경은 신중
스스로 '성장론자'라고 밝힌 최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부터 적극적이고 강력한 경제정책을 자신했다. 그는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민생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며 "거시를 포함해 내수 진작과 기업투자 활성화를 포괄하는 종합적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경제부총리 취임 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을 아꼈다. 추경 편성에 대해 최 후보자는 "경제 상황만을 보면 추경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라면서도 "재원 사정이나 법적 요건을 봐야하고, 현재 내년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 문제도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한국은행 총재와 자주 만나면서 경제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모호한 발언에 대한 추궁이 계속되자 최 후보자는 "재정을 좀더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다"며 "여러 수단이 있지만 취임 후 열흘 이내에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증세는 없다'…농어민 계속 지원
최근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에도 직접적인 증세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 후보자는 올해 세수 전망에 대해 "다소간의 차질은 불가피하지만,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등 직접적 증세보다는 징세 노력을 강화하겠다"며 "법인세나 부가가치세 세율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 "세계적으로 세율을 올리는 나라는 거의 없고, 대부분 내린다"며 "국제적인 조세 경쟁의 추세를 감안하고, 법인세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와 내년 일몰을 앞두고 있는 농어업용 기자재와 석유류 부가가치세 영세율 규정은 사실상 연장 방침을 시사했다. 최 후보자는 "면세유와 농업용 기자재 영세율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서도 발표했지만, 10년간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 '담배 세금은 인상'…국민 건강 우선
담배 세금에 대해서는 '증세'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최 후보자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담배 소비를 억제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담배에 붙는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은 "경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면서도 세수를 늘릴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담배소비세를 인상하는 것"이라며 "연간 세수를 4~5조원 가량 늘릴 방법이지만, 정부가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 후보자는 "세수 차원보다는 국민 건강 차원에서 담배세 인상이 필요하다"며 "지난 10여년간 담배 가격이 동결됐고, 국제적으로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부동산 규제 완화'…거래부터 늘려야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소신은 확고했다. 최 후보자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나기 직전에 비해 수도권 주택 가격이 20% 가까이 떨어졌다"며 "앞으로도 하향 안정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켜 전세 수요를 거래로 당겨줘야 서민들이 이용하는 전월세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키지 않고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지 않은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추진할 계획도 밝혔다. 최 후보자는 "LTV와 DTI 규제에 대해 은행권과 비은행권, 지역별로 차등을 두는 게 적절한 것인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모피아와 안홍철'…"낙하산은 다 있어"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논란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도 쏟아졌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기재부와 국세청, 관세청 등 퇴직공직자 416명이 유관기관이나 로펌 등에 가 있다"며 "관피아 중에서 제일 센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졌다.
같은 당 김현미 의원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을 지목하며 "대통령선거에서 몸 담았던 인물들이 무더기로 공공기관에 가는 '선피아'부터 정리해야 한다"며 "이미 기재위 여야 간사가 안 사장 퇴진에 합의한 사안인데, 왜 아직도 있느냐"고 지적했다.
최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구조적 유착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개혁할 것"이라며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국회에서 잘 논의해주면 기준에 따라서 하겠다"고 답변했다. 안 사장에 대해서는 "과격한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는 역대 정권에서도 예외가 없었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 배우자·자녀 의혹…"그럼 어떻게 해?"
배우자와 자녀를 향한 의혹도 터져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은 "2006년 배우자 명의로 하나은행에 34억원의 예금이 나타났다"며 "인사청문 자료에는 17억원으로 신고됐는데 어떤 경위인지 밝혀달라"고 추궁했다. 최 후보자는 "집사람이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의 매도대금인데, 오래된 부분이라 정확하지 않다"며 "바빠서 집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 다 챙기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홍종학 의원은 "후보자 자녀가 삼성전자와 골드만삭스에 다니는데, 기재부가 이들 회사에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며 "미국에서는 투자은행이 권력기관 자녀의 취업을 이용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후보자는 "경제부총리가 세금이나 모든 정책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며 "공직자 자녀에게 회사 취업을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반박했다. 홍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고 맞섰다가 "그런 오해가 있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