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KT, 사기업인가 공기업인가

  • 2013.09.03(화) 15:51

지난 2008년 11월 KT 임직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배달됐다.

 

"수급월불류(水急月不流). 냇물 속의 달이 급하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달은 그대로 있고 물만 급하게 흘러간다 라는 뜻입니다. 주변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근본에 충실한 달을 닮으려 언제나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저의 부덕으로 인해 회사가 마치 나침반도 없이 모래사막을 걷는 것처럼 창사 이래 최대 혼란을 겪으며,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

 

공사 출범과 함께 26년간 보람과 열정으로 일하게 해준 KT에 보은의 마음으로 CEO자리에 섰으며, 지난 3년여 동안 KT의 성장과 재도약을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다른 미련은 없습니다. 또한 평소 개인적으로 CEO에게는 정해진 임기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의 나침반과 같았던 노자의 동선시(動善時)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며, 여러분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 (중략)

 

지금 이 원더메모를 쓰고 있는 이 새벽에도, 제게 직장생활의 보람과 CEO로서 책임감, 그리고 회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게 해 준 3만6000 KT가족들을 생각하면 뿌듯하면서도 저미어 오는 가슴 주체할 수가 없네요"

 

남중수 전 KT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쓴 이임사다. 당시 검찰 수사를 받았던 남 전 사장의 고뇌가 묻어난 글귀다. 남 전 사장은 2005년 사장에 취임했고 2008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배임수재 혐의와 맞물려 그 해 11월 퇴임했다. 당시 KT 안팎에선 정권교체후 ‘자진사퇴를 거부한 대가’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KT의 지배구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KT는 2008년 초 기업지배구조센터가 선정한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까지 한 바 있다. 3년 연속 수상기록이다. 

 

[이석채 KT 회장]

 

우여곡절 끝에 후임 사장으로 취임해 회장으로 직급을 올린 이석채 회장도 이사회내 지배구조위원회를 뒀을 정도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위원회 신설안을 가결시킨 이후 기자와 만났을 때에도 "KT의 지배구조는 공기업적 성격이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배구조위원회는 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면서 "앞으로 어떤 논의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8.65%)이고 정부는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2002년 정부 지분 매각 완료 뒤 KT는 순수 민영기업으로 탈바꿈 했다. 하지만 KT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부침이 심하다.

 

애초부터 이 같은 지배구조를 걱정했던 이 회장 조차도 올해 들어선 전임 CEO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2년 CEO 연임에 성공해 2015년 임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올해초 정권이 바뀌면서 또다시 사퇴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 회장이 진화에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 2일 사내 행사에서 일부 임직원을 겨냥해 단호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자기의 울타리, 회사, 집이 무너져가는데도 바깥에다 대고 회사를 중상모략하면서 회사가 어쨌다 저쨌다 끊임없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게으른 사람, 아직도 태평인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KT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주인정신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이 회장이 일부 임직원에게 경고한 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왔던 사퇴설을 부인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사퇴를 주장해온 일부 세력을 겨냥한 경고성 메시지다. 다만 CEO 사퇴설이 이번으로 마무리 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는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인물을 두둔한다기 보다는 민영기업 KT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면서 "201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논란이 어이없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