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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긴 한데"…유통업계의 '계륵' 메타버스

  • 2021.07.16(금) 15:00

[크로스보더 메타버스]㊦유통 in 메타버스
'참신한 경험'과 '아쉬운 내실' 공존
소비자 유인책 부족…현실 연계 전략 필요

주로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에 머물렀던 '메타버스'가 유통과 자동차, 금융 등 산업 영역에 빨려 들어가면서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가상 환경 비즈니스의 실험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메타버스의 확장성에 대해 깊숙히 살펴봤습니다. [편집자주]

유통업계가 메타버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롯데하이마트는 닌텐도 '동물의 숲(동숲)'에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공간을 열었습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네이버제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가상 매장 오픈을 앞두고 있죠.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이미 제페토 안에서 가상 제품을 판매하는 등 수익성 측면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메타버스가 '제2의 유통 시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말 그럴까요. 궁금해졌습니다. 유통업계가 메타버스에서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요. 동숲을 켜고 롯데하이마트가 만든 '하이메이드섬'을 찾아갔습니다. 제페토 속 한강 공원에도 놀러가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아쉽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현실 같은 너

하이메이드섬은 롯데하이마트가 자체 브랜드 '하이메이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동숲 내 다른 플레이어의 섬을 여행하는 '꿈' 콘텐츠를 활용했죠. 침대에 누워 간단한 주소를 입력하면 하이메이드섬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첫인상은 화려했습니다. 규모는 컸고, 지형도 보다 다양했습니다. 곳곳에 포즈를 잡고 앉아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하이메이드섬은 베이직·디자인·시리즈·아이디어 등 4개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각 공간마다 해당 라인업의 제품 이미지를 담은 액자들을 세워 뒀죠. 예쁘게 꾸며진 공간을 바라보면서 제품을 자연스럽게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게시판에는 하이마트가 방문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엘포인트 증정 이벤트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요. 아쉽게도 제품을 아이템으로 증정받는 등 게임 자체 이벤트는 없었습니다.

제페토(좌)와 하이메이드섬(우) 모두 '가상현실'보다는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아쉬운 점은 또 있었습니다. 동숲의 섬에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모은 아이템들을 전시하는 곳이죠. 이 공간에 하이메이드 상품을 진열할 수 있었다면 더욱 흥미로웠겠지만 게임 시스템상 불가능했습니다. 박물관 건물은 있었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방문객 입장에서 다소 김이 빠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제페토는 비교적 '가상현실'에 가까웠습니다. 한강공원에 찾아가면 지하철 입구에 캐릭터가 생성됩니다. 따릉이나 푸드트럭 등 한강공원에 있을 법한 시설이 현실적이었습니다. 푸드트럭을 터치하면 캐릭터의 손에 음식이 쥐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음식을 먹는 등의 움직임은 불가능했습니다. 제페토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을 곧 입점 예정인 CU편의점에 적용한다면 온·오프라인을 연결시키는 것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이메이드섬과 제페토를 통해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보다 아직은 '게임'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제한 사항과 한계가 너무 많았거든요. 현실 세계와의 연결점을 찾을 방법도 결제 시스템 외에는 마땅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타버스가 초기 단계인 만큼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반쪽 공간'에 불과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장 미래 밝지만…가능성은 '미지수'

그럼에도 유통업계는 메타버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선 '무한한 확장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에는 공간 등 현실적 제약이 없습니다. 엄청난 수의 고객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죠. 실제로 가수 블랙핑크가 지난해 제페토에서 개최한 사인회에는 전세계에서 4500만명의 팬이 찾아왔습니다. 현실 사인회였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장의 미래도 밝습니다. 교보증권은 올해 38조원 수준인 전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30년 125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트렌드가 정착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유통업계에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은 드물죠. 메타버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메타버스 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메타버스로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내려면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플랫폼 개발과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2003년 출시 직후 '미래'로 추앙받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온라인 PC 게임이 된 '세컨드 라이프'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메타버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세컨드 라이프는 이름처럼 처음부터 '가상 인생'을 표방했습니다. 메타버스와 같은 개념이죠.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초보자에게 목표를 주는 등의 오락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됐습니다. 때문에 신규 유저 유입이 지지부진했습니다. '판'이 커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수익성도 좋지 않았습니다. 투자 여력이 줄어들며 콘텐츠 노후화도 제때 막지 못했습니다. 지루함을 느낀 기존 유저들은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죠.

게다가 2008년부터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됐습니다. 하드웨어 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PC 중심이었던 세컨드 라이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이 세컨드 라이프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렇게 트렌드가 바뀌기까지는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유통 기업에게 IT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큰 리스크입니다. 이것이 유통업체가 쉽게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뛰어들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실과 연계되는 제3의 메타버스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 전략은 메타버스의 효과를 반감시킵니다. 먼저 플랫폼에 일정 부분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플랫폼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부담도 커지겠죠. 게다가 플랫폼에 입점한 다른 기업과 경쟁도 해야 합니다. 오프라인 시장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죠. 유통업계가 메타버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만 가능성만큼은 충분해 보였습니다. 하이메이드섬과 제페토 속 한강공원은 흥미로웠습니다. 30분 가까이 둘러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요소만 개선된다면 기꺼이 제 게임 아바타를 위해 지갑을 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콘텐츠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통업계는 메타버스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요. 유통 공룡이 메타버스 공룡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미래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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