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커머스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공략에 나섰다.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사업을 하는 '알리익스프레스'에 이어 중국의 대표 도매 사이트인 '1688닷컴'까지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대표되는 국내 오픈마켓은 비상이 걸렸다.
현재 오픈마켓 판매자(셀러)들은 중국 이커머스의 저가 공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입점사인 네이버, 쿠팡, 지마켓 오픈마켓 사업자도 긴장 중이다. 이젠 '대 셀러 시대'가 저물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으로 경쟁력 없는 셀러들은 도태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알리 탓에 장사 접을 판"
11일 회원수 78만의 쇼핑몰 운영자 커뮤니티 '셀러오션'에는 중국 이커머스의 국내 진출을 우려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 판매자는 "알리익스프레스, 1688 등으로 가격 낮은 공산품은 결국 중국에 먹히게 될 것 같다"며 "중국 셀러의 적극적인 한국 진출로 중국 사입이 대부분인 공산품 셀러 시장은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오픈마켓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거의 모든 오픈마켓 셀러들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의 수익구조는 단순하다. 의류·가전·생활용품 등을 중국 도매사이트에서 저가로 사와 오픈마켓에서 판매한다. 따라서 향후 중국 이커머스들이 국내에 자체적으로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 직접 나선다면 국내 오픈마켓 셀러보다 더 저렴하게 물건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국내 오픈마켓 셀러들의 설 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또 다른 셀러는 "중국 직수입 원가에 관부가세·해상운임·내륙운송비를 더하면 가격 경쟁력을 이길 수 없다"면서 "알리는 수입업체가 부담하는 배송비, 관부가세가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셀러는 아예 오픈마켓을 접겠다고 했다. 자신을 '개미 셀러'라고 소개한 한 판매자는 "앞으로 돈 많은 상위 사업자만 시장 개척으로 살아 남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대(大) 셀러 시대'의 종말
국내 오픈마켓 셀러가 급증한 것은 지난 2010년 즈음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 이커머스들은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이 없었다. 주요 국내 오픈마켓 '핫템'을 중국 도매사이트에서 저가 매입해 팔기만 해도 큰 돈이 됐다. 유튜버 '신사임당' 등이 이런 방법으로 큰 돈을 벌면서 '대(大) 셀러 시대'가 열렸다. 유튜브 등에는 '일 매출 ○억 쇼핑몰 창업하는 법' 등의 콘텐츠가 봇물을 이뤘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당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셀러의 중국 사입량도 폭증했다. 중국 이커머스들이 한국을 눈여겨봤던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 3월 알리익스프레스는 물류 등 한국 시장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소비자를 위한 별도 서비스부터 내년에는 국내 물류센터 건립까지 고려 중이다. 알리바바그룹의 대표 도매사이트 1688닷컴도 내년 2월 한국에 플랫폼 오픈을 예고했다.
이미 중국 이커머스는 국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지난해 10월 297만명에서 지난 10월 613만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지마켓(582만명)을 넘어선 수치로 쿠팡, 11번가에 이은 3위다. 이외에도 테무, 쉬인 등 중국계 앱들이 국내 쇼핑 시장을 흔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이커머스들의 한국 시장 공략으로 오픈마켓 시장이 크게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가 국내 셀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중국 이커머스를 접촉할 수 있게 돼서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국내 오픈마켓 상품의 절반 이상은 중국 플랫폼에서 넘어온 것들"이라며 "이제 시장 구조 자체가 변할뿐만 아니라 커머스 경쟁이 국가 간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찐' 셀러만 살아남는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공격이 커세지자 국내 오픈마켓 사업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현재 네이버, 쿠팡, 지마켓, 11번가, 큐텐 등 대부분 이커머스 업체들은 오픈마켓을 운영 중이다. 오픈마켓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근간이다. 직매입보다 운영 비용이 저렴한 데다, 입점 셀러들을 통해 상품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그동안 전략적으로 오픈마켓 사업을 키워왔다.
문제는 셀러들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면 매출, 거래액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특히 네이버, 11번가, 지마켓 등은 거래액 대부분이 오픈마켓에서 발생한다. 국내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 42%인 네이버쇼핑의 거래액은 지난해 기준 35조원에 달한다. 11번가도 거래액의 대부분이 오픈마켓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직매입 비중이 높은 쿠팡도 총 거래액 37조원 가운데 13조원 가량이 오픈마켓이다.
업계는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아직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 이커머스에 대한 불신이 큰 데다, 마케팅 등에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진짜'셀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중국에서 벗어나 국내, 동남아시아 등 경쟁력있는 독점 도매처를 발굴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알리익스프레스, 1688 등의 상륙을 예의주시 중"이라면서 "당장 오픈마켓 시장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예측도 있지만 확장성에서 가품 등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셀러들도 이젠 전략적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