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나 재무정보가 부족한 '씬파일러'에 대한 신용평가에 인공지능(AI)이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존 신용평가에서 활용해 온 재무정보를 넘어 거래정보와 비정형 데이터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신용평가 외연이 넓어지고 있어서다.▷관련기사: [SFS 2.0]재무제표 밖 거래망까지 읽는다…AI가 넓힌 신용평가(2026년 9월30일)
지난 28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린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2기(SFS 2.0)' 제4차 회의에서는 AI 기반 신용평가의 발전 방향과 함께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준비해야 할 과제를 논의했다. 토론자들은 AI의 성능을 높이는 것만큼 데이터 활용과 모형 관리, 금융안정, 사람의 개입 범위 등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AI, 더 정교한 신용평가…포용할 수도 vs 배제될 수도
유재수 SFS 간사는 씬파일러와 중신용자에 대한 AI 신용평가 활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기존 정형화된 재무제표로 평가하기 어려운 차주에 대해 AI를 통한 비정형 데이터 활용 시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화두를 던졌다.
윤종규 성균관대 특임교수(전 KB금융그룹 회장)는 "AI 활용을 통한 신용평가가 확대되면서 현안인 포용금융 측면에서 사회초년생, 플랫폼 사업자, 초기·영세사업자 등 데이터가 부족한 씬파일러들을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쪽으로 갈 수 있다"면서 "소외된 영역을 여신 금융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AI가 신용위험을 더 정확하게 포착한다고 해서 그 결과를 곧바로 대출 중단이나 한도 축소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병환 회계정책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금융위원장)은 "AI 신용평가가 포용금융의 일환에서 대출 차주 범위를 넓히는데 활용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도 "반대로 대출에서 배제되는 차주가 있을 수 있는데 적절한 속도로 기존 부실한 부문에 대한 여신을 줄여나갈 수 있을 때 생산적 금융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역시 "거래처의 부실 등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요인 때문에 금융에서 배제되는 기업도 생길 수 있다"며 "이런 기업에는 단순히 금융지원을 끊기보다 정상화 가능성을 따져 유예기간을 주거나, 매출채권 금융이나 보증 등 다른 금융수단을 함께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위험을 더 정확히 찾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종원 서울대 특임교수(전 경제수석)는 "씬파일러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좋지만 신용도에 맞는 금융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체계 마련이 우선이며 금융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면서 "신용평가를 포용성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가모형 승인까지 수년…승인체계 바꿔야
AI 활용을 통해 평가모형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승인체계의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단순히 평가에 활용할 데이터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AI를 활용한 신용평가모형의 개발·변경 속도와 기존 승인·검증체계 속도의 간극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순 나이스평가정보 솔루션본부장은 과거 대형 시중은행에서 소규모 개인사업자 평가모형을 개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승인받기까지 수년이 걸린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3년이면 모형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AI 시대에 맞춰 당국의 모형 승인체계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종규 특임교수는 "AI 활용의 핵심은 계속 써서 보완하고 변형하는 것"이라며 "모델 승인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고 경직되면 포용금융 측면에서도 유연성과 신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가모형의 승인시스템이 앞으로도 유효한지, 기존 체계를 유지할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용평가모형은 여신 의사결정뿐 아니라 충당금과 BIS비율, 손익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검증은 필요하다. 다만 AI의 빠른 변화 속도를 반영할 수 있도록 승인체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기술력 높여도 데이터 못 쓰면…활용 기준 명확화 필요
AI의 성능을 높이는 것과 함께 실제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넓히는 작업도 과제로 꼽혔다. 기존 재무제표에 담기지 않는 데이터를 AI가 분석하더라도 이를 여신심사나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지 기준이 불명확하면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병두 대표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등으로 기업이 제공한 데이터를 여신심사나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면서 "제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좋은 모형을 만들어도 효과가 반감되고 확산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용구 더존비즈온 대표는 "AI산업 발전을 위해 컴퓨팅 인프라, 모델 투자뿐 아니라 기업이 데이터를 안전하고 적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며 "데이터 활용이 제한되면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서비스 창출 연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개인정보법상 법인과 개인의 정보는 구별되지만 실제 기업 데이터에는 사업주와 임직원, 고객 정보가 혼재돼 활용에 어려움이 있다"며 "법인 자체의 비개인 경영정보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개인사업자 정보 처리 요건을 구체화하는 등 개인·개인사업자·법인의 정보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안정·편향성·설명가능성…사람 개입 범위도 과제
AI 신용평가가 정교해질수록 금융시스템 전체가 같은 신호에 동시에 반응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I가 비슷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을 판단하면 여러 금융회사가 동시에 대출을 줄이는 '동조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종원 특임교수는 "AI가 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하면 경기 순응성이 오히려 강해질 수 있지만, 경기 외 다양한 변수를 함께 고려하면 이를 낮출 수도 있다"며 "거래 네트워크 정보 역시 연쇄부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금융기관의 위험 신호에 대한 동조화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지면 거래 관계를 통해 다른 기업의 신용도까지 낮아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금융안정 정책 역시 개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위험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전체의 위험과 충격 전파 가능성을 살펴보는 거시적 관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네트워크 위험은 개별 금융기관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AI가 평가한 신용평가의 공정성 여부도 과제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신용평가 결과 편향성 검증도 중요하다"면서 "AI 신용평가모형에 사용되는 데이터에 따라 결과에 편향이 생길 수 있어 이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경묵 경제학 박사(CJ그룹 자문역)는 AI가 내놓은 결과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신용평가 결과의 설명가능성도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AI가 해당 결과를 왜 내놓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 역시 "소비자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설명의무가 있는데 생성형 AI모델로 추출된 신용평가 결과에 대해 고객이 설명을 요구할 경우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며 "설명가능성에 대한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AI가 신용평가에 활용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사람의 개입 범위를 정하는 것도 과제다. 박상순 본부장은 "AI 평가모형이 빠르게 바뀌면 어제 대출 가승인이 났던 사람이 오늘은 승인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AI가 자동으로 판단해도 되는 영역과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영역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정림 전 KB증권 경영자문역은 "대기업이나 프로젝트 관련 여신에서는 여전히 심사역의 역량이 중요하다"면서 "잘하는 심사역과 그렇지 않은 심사역의 차이를 만드는 지점을 분석하고, 은퇴한 우수 심사역의 '암묵지'를 소프트웨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