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準) 대기업 합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자동차부품 그룹 일진(日進·ILJIN)글로벌의 성장세는 그만큼 파죽지세다. 계열사마다 곳간에는 현금이 차고 넘친다. 이렇다 보니 2대(代) 세습은 물론 3세 대물림까지도 돈 걱정 없이 술술 풀렸다. 일진글로벌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다.
5개 계열사 현금성자산 ‘1조’
일진글로벌은 고(故) 이상일(1938~2023) 창업주가 1973년 7월 설립한 봉제공장 일진물산(日進物産)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려대 상대를 졸업한 뒤 한국전력에서 근무하다35살 때 사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78년 12월 일진단조(현 일진베어링) 설립이 분수령이다. 현대자동차 국산 1호 자동차 ‘포니’용 트랜스미션 기어와 스트럿바 등을 납품하며 자동차부품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1982년 8월 컨테이너 부품(한국블럭스위치), 1986년 1월 섀시 부품(동아산업·현 ㈜일진)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여세를 몰아 1994년에는 휠 베어링(Wheel Bearing)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늘의 일진글로벌을 있게 한 효자 제품이다. 자동차 차체를 연결해 차량 구동 때 무게를 지지하고 바퀴의 회전을 원활하게 하는 핵심 부품이다.
특히 2003년 3월 독자 개발해 현재 ㈜일진글로벌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3세대 휠 베어링은 세계 1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011년 5월에는 베어링아트를 설립해 지금은 철도차량, 전기차, 로봇 등에 장착되는 산업용 베어링까지 아우른다.
㈜일진글로벌을 위시해 ㈜일진, 일진베어링, 베어링아트 4개사는 지난해 매출(연결 합산) 3조7900억원, 영업이익 390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0.3%로 두 자릿수를 나타냈다. 경북 경주·영주, 충북 제천, 강원 영월에 국내 12개 공장과 중국·미국·인도·독일 등 10개국에 11개 생산·판매법인을 둔 일진글로벌의 사업 계열사들이다.
이밖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그룹 사옥 일진빌딩을 소유한 일진글로벌홀딩스와 친족사 어반넥스트·라센트홀딩스·디엔케이(부동산 임대), 베어링플러스(자동차부품 판매) 4개사가 있다. 국내 9개사 모두 비상장사다.
작년 말 국내 계열사의 자산(별도 합계)은 5조600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진글로벌을 첫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 이유다. 창업 53년만이다.
베어링아트를 제외하고는 빚이 없다. 일진글로벌홀딩스 3930억원, ㈜일진글로벌 3370억원, 일진베어링 1480억원, ㈜일진 954억원, 베어링아트 551억원 등 현금성자산(단기투자자산 포함)은 1조280억원에 이른다.
2대 사주 이동섭 오너십 ‘넘사벽’
일진글로벌의 준대기업 합류는 4개 사업 계열사 모두 안정적 성장 기조를 유지해온 게 이유지만 그 중에서도 3세대 휠 베어링 전문 업체 ㈜일진글로벌이 가장 독보적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일진글로벌은 1978년 1월 일진상사로 설립된 뒤 1998년 1월 일진블럭스위치→2002년 2월 ㈜일진글로벌을 거쳐 2019년 7월 인적분할을 통해 지금은 투자 및 부동산 부문(일진엔터프라이즈·현 일진글로벌홀딩스)과 베어링 사업부문(㈜일진글로벌)으로 나눠진 상태다.
2005~2008년 ㈜일진글로벌은 연매출(연결)이 2000억원대 수준이었다. 2009년 매출 3580억원, 영업이익 827억원으로 이익률 23%를 찍은 뒤로는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매출(8650억원)이 ㈜일진(8280억원)을 앞질렀다. 2015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작년에는 2조원을 목전에 뒀다. 영업이익은 2010년 1000억원, 2017년 2000억원을 넘어선 뒤 2021~2025년 5년 동안 한 해 평균 2440억원을 벌었다. 이익률은 13.2~15.2%로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이런 이유로 ㈜일진글로벌은 과거 중추사 ㈜일진을 제치고 신흥 대장사(大將社)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일진글로벌의 작년 매출(1조9100억원)은 ㈜일진(9740억원), 베어링아트(5660억원), 일진베어링(3390억원)을 압도한다. 영업이익(2903억원)은 3개사 합산 영업이익(1003억원)의 거의 3배다.
결국 ㈜일진글로벌을 필두로 한 계열사들의 지속적인 수익 호조에다 환율 상승 효과까지 더해져 그룹의 덩치가 커짐으로써 일진글로벌이 준대기업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23년 2대 체제가 출범한 지 3년만이다. 중심에는 이 창업주의 1남3녀 중 장남 이동섭(55) 회장이 자리한다.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 섐페인 캠퍼스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뒤 32살 때인 2003년 2월 가업에 입문한 후계자다.
미국 법인장, 기획조정·전략기획 실장 등을 거쳐 2022년 부회장에 오른 뒤 2023년 6월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 창업주가 창업 50년 만에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다. 이어 1년 뒤인 2024년 6월 회장 자리에 앉았다.
현재 이 회장의 오너십은 ‘넘사벽’이다. 개인지분을 합해 이 회장(70%)→㈜일진(100%·60%)→일진글로벌홀딩스·㈜일진글로벌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다. 일진베어링은 80%를 직접 보유 중이다. 베어링아트만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창업주 작고 이후 적잖은 상속세가 뒤따랐을 테지만 계열 장악력은 오히려 더 세졌다. 이 이유 역시 ‘돈 잘 버는’ 신흥 ‘캐시 카우’ ㈜일진글로벌의 현금을 십분 활용한 데 기인한다. (▶ [거버넌스워치] 일진글로벌 ②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