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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문해력]혁신, 현실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

  • 2026.08.29(토) 10:00

축적된 연구·기회·임상 결과 맞물린 mRNA 백신
30년 정설 아밀로이드도 임상 거치며 가설 수정
화려한 선언보다 인체 대상 검증 데이터 살펴야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세계는 이전에 없던 방식의 백신을 마주했습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개발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입니다. mRNA 백신은 팬데믹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하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결코 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온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mRNA의 의약품 개발 시도는 1990년대부터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쉽게 분해되는 불안정성과 전달 한계, 과도한 면역반응이 오랜 걸림돌이었습니다. 면역반응 억제와 지질나노입자(LNP) 전달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이전까지 허가받은 의약품은 전무했습니다.

코로나19는 mRNA에 전례 없는 기회였습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기초 연구에 막대한 공공자금, 규제기관의 패스트트랙, 글로벌 임상이 맞물렸고, 3상에서 90% 이상의 예방효과를 증명하며 검증된 모달리티로 도약했습니다. 축적된 기술과 특수한 환경, 확실한 임상 데이터가 만든 결실이었습니다.

성공한 기술, 더 많은 실패 있다

현재 블록버스터로 자리 잡은 주요 신약과 기반인 플랫폼 기술들도 같은 경로를 거쳤습니다.

원인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난치성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열쇠로 주목받은 RNA 간섭(RNAi) 기술도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1998년 발견 이후 체내 전달의 한계로 수많은 파이프라인이 좌초된 끝에, 첫 치료제 '온파트로'의 미국 FDA 승인까지는 20년이 소요됐습니다.

최초의 ADC '마일로탁'은 2000년 FDA 조건부 승인 후 유효성·독성 문제로 2010년 자진 철수했습니다. 이후 링커 안정성과 독성 제어 기술이 보완되며 캐싸일라(2013년 승인), 엔허투(2019년 승인) 등 후속 약물이 시장을 열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 역시 표적 단백질(CTLA-4, PD-1) 발견부터 상용화까지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들 기술의 공통분모는 단순히 연구 기간이 길었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초기 가설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패 속에서 구조와 메커니즘을 수정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데 있습니다.

30년 믿은 정설, 임상에서 흔들렸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사는 과학적 가설이 임상에서 검증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990년대 초 정립된 '아밀로이드 가설'은 뇌 속 아밀로이드베타(Aβ) 축적을 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며 수십 년간 알츠하이머병 신약개발의 표준 모델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한 신약 후보물질들은 임상 3상에서 연쇄적인 실패를 겪었습니다.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하고도 인지기능 개선에 실패하자 가설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쟁이 격화됐습니다. 연구진은 표적 형태(올리고머·원섬유)와 투약 시점을 초기 단계로 수정했고, 그 결과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이 초기 환자 대상 효능을 입증하며 승인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질환의 완전한 정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타우 단백질 엉킴과 신경염증 등 복합 병리가 얽혀 있어 단일 표적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30년간 다듬어진 정설조차 실제 환자의 임상 데이터 앞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는 것이 신약개발의 본질입니다.

새로운 설명, 검증된 '발견'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일부 바이오기업이 제시하는 새로운 질병 원인이나 작용기전을 접할 때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이유를 새로운 현상으로 설명하거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질병의 원인을 규명했다고 주장합니다. 낯선 전문 용어가 붙고, 이를 해결하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치료 난제를 단숨에 극복할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도 뒤따릅니다.

물론 새로운 가설에서 혁신적인 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혁신 역시 처음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주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새로운 현상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는 것과, 그것이 실제 인체 질병의 핵심 메커니즘임을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세포나 동물에서 관찰된 결과가 사람에게도 재현되는지, 독립된 연구진을 통해 검증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가설을 바탕으로 개발한 약물이 임상에서 통계적으로 입증해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미국 바이오협회(BIO) 분석에 따르면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물질 중 최종 허가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10% 안팎에 불과합니다. 임상에 진입조차 못 하고 기초 단계에서 사라진 수많은 가설과 타깃까지 감안하면 신약개발 성공의 문은 훨씬 더 좁습니다.

바이오의 역사를 돌아보면 혁신은 화려한 선언보다 언제나 훨씬 느리고 무겁게 움직였습니다. mRNA도, RNAi도, 면역관문억제제도, ADC도 처음 제시된 아이디어가 수많은 반증과 실패를 견뎌내며 조금씩 정교해진 결과물입니다.

새로운 질병 원인이나 치료 메커니즘이 제시됐을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그 주장이 얼마나 참신한지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검증됐는지, 누가 재현했는지,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데이터가 뒷받침되는지입니다.

과학적 혁신은 이름이 붙는 순간 완성되지 않습니다. 혹독한 임상 검증을 견뎌내고 마침내 환자의 치료 결과로 바꾸었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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