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빅파마의 대형 도입 품목이 국내 전통 제약사들의 실적을 이끄는 또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는 전국 병·의원을 아우르는 국내사의 탄탄한 영업망을 빌려 초기 시장 침투력을 높이고, 국내사는 검증된 블록버스터를 장착해 단숨에 외형을 넓히는 윈-윈 전략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유통 협업 '눈길'
9일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최근 한국노바티스와 만성 자발성 두드러기 치료제 '랩시도(성분명 레미브루티닙)'의 국내 유통·판매·프로모션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유한양행이 유통 전반과 의원급 판촉을 전담하고, 종합병원은 한국노바티스가 직접 맡는 구조다.
유한양행은 오랜 기간 다국적 제약사와 탄탄한 판매 협력을 이어온 대표적 주자다. 베링거인겔하임과 2010년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를 시작으로 당뇨약 트라젠타·트라젠타듀오, 자디앙 등으로 협력 품목을 넓혔다. 길리어드사이언스와도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베믈리디 등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며 오랜 신뢰 관계를 쌓았다.
글로벌 대형 품목의 파급력은 종근당 실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종근당은 지난해 9월 한국노보노디스크제약과 비만치료제 '위고비'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종근당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위고비 단일 품목 매출은 935억원에 달했다. 상반기 종근당 연결 매출(9262억원)의 약 10.1%를 차지하는 규모다. 위고비는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기존 주력 품목이던 골다공증약 프롤리아(598억원), 이상지질혈증약 아토젯(565억원)을 단숨에 제치고 회사 내 최대 매출 품목으로 올라섰다.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치료제 유통 '합종연횡'
이 같은 합종연횡은 제약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7월 한국에자이와 불면증 치료제 '데이비고' 코프로모션 계약을 체결하고 300병상 이하 병·의원 판촉과 전국 유통을 맡았다.
한미약품도 한국페링제약의 야뇨증 치료제 '미니린·녹더나'의 유통 및 병·의원 영업을 시작했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사노피의 영유아 RSV 예방항체 '베이포투스'와 A형간염 백신 '아박심'을 공동 공급하고 있다. 제일약품 역시 과거 유한양행이 10여 년간 판매하던 한국UCB의 알레르기 치료제 씨잘·지르텍 판권을 넘겨받아 영업을 전개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자체 영업망 확충 대신 국내 영업망을 지렛대 삼아 빠르게 처방을 확대할 수 있다. 국내사 역시 수년간의 R&D 리스크 없이 검증된 대형 품목을 확보해 기존 영업조직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외형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
다만 외형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숙제다. 완제품을 들여와 파는 품목은 대부분 '상품매출'로 잡히는데, 자체 생산하는 개량신약이나 복제약 대비 마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파트너십 계약 갱신 시점에 판권이 타사로 넘어갈 경우 발생하는 매출 공백 리스크도 안고 가야 한다. 실제 제일약품은 2025년 1분기 리리카·쎄레브렉스 등 비아트리스 품목의 공동판매 계약이 종료되면서 연간 연결 매출 19.5%나 줄어드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결국 도입 품목으로 확보한 외형 성장을 자체 R&D 투자로 잇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속 빈 강정'식 외형 경쟁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