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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보고 폭풍 대비책 세우는 대한항공 '묘수 뭘까'

  • 2023.05.20(토) 08:00

[워치인더스토리]
EU중간보고 "경쟁제한우려"·미국 소송검토 보도
대한항공, 오히려 최종 승인 위한 힌트로 삼아야

/그래픽=비즈워치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깐깐한 EU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참 순탄치 않습니다. 지난 2020년 말부터 진행됐으니 벌써 햇수로 3년째 접어듭니다. 국내 항공 산업 재편을 위해 빠른 합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국내 항공 산업이 독점체제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지만 여전히 결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아직 결론나지 않는 이유는 해외 경쟁당국 승인이 완료되지 않아서입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완료하기 위해선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필수입니다. 해외 경쟁당국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덩치가 커질 대한항공이 한국-자국간 노선 경쟁 환경을 해칠지 여부를 조사합니다. 자칫 자국 항공사는 물론 타 항공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대한항공은 그동안 총 14개국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요청했습니다. 그중 한국, 영국, 중국 등 11개국 승인을 받았거나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마친 상황입니다. 이제 남은 곳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입니다. 이중 가장 까다로운 곳이 EU입니다. EU의 경우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통상적으로 기업결합심사 통과가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힙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 경쟁당국의 2단계 심사가 개시된 46건의 심사 결과, 무조건부 승인은 6건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조건부 승인(27)이었습니다. 금지도 6건, 철회는 7건이었습니다. 심사 기간도 깁니다. 그만큼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이번 건도 이미 심사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결합 심사가 6개월 만에 끝났을 때 다들 놀랐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EU 메시지에 담긴 의미

그런 EU가 최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심사 보고서(Statement of Objections)를 공개했습니다. 지난 2021년 1월 시작된 EU 집행위원회 심사는 올해 2월 2단계 심사로 넘어간 바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2단계 심사의 중간보고서 성격입니다. 최종 심사 결과는 오는 8월로 예상됩니다.

EU 보고서의 뉘앙스가 묘합니다. 보고서는 “두 항공사의 병합이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의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합병 시 해당 노선에서 가장 큰 여객·화물 항공사가 되는데 소비자들의 중요한 대체 항공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U 집행위가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경쟁 제한'이 강조된 겁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업계에서는 EU 집행위 보고서 내용을 두고, EU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EU 집행위는 2단계 심사에 돌입할 때도 경쟁 제한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만일 EU가 최종적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합병건은 사실상 물거품이 됩니다. 이론상으로는 EU의 문턱을 넘지 못해도 미국과 일본의 승인을 받는다면 합병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럽 사업은 분리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죠. 게다가 EU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미국과 일본의 승인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미국, 너도?

대한항공은 EU 집행위 보고서에 담긴 의미 파악에 분주합니다. EU 집행위가 중간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두고 "통상적인 절차"라고 밝혔지만 EU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EU의 최종 결정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큰 관문인 만큼 최대한 EU의 의중을 읽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도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미국 법무부가 소송 제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미국의 한 언론매체의 보도이지만 미국 측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경쟁제한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예를들어 반도체 등 핵심 화물 운송의 상당비중을 한 회사가 담당할 경우 공급망 탄력성에 문제될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만일 미국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미국 정부가 외국 항공사 간 합병을 막기 위해 소송을 건 첫 사례입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021년 저비용항공사(LCC) 제트블루와 아메리칸항공간 미국내 노선 제휴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올 3월에는 제트블루의 스피릿 항공 인수·합병을 막기 위해 매사추세츠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U에 이어 미국 정부까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대한항공 셈법은 복잡해졌습니다.

대한항공, '힌트'를 얻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은 "적극적 시정 조치 논의를 통해 최종 승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상적인 표현입니다. 다만 대한항공 내부에선 이번 EU 중간보고서가 오히려 힌트가 됐다는 분위기 입니다. EU가 중간 보고서를 통해 우려부분을 지적한 만큼 최종 승인을 위한 대응부분과 방향이 명확해졌다는 겁니다.

EU 집행위가 민감해 하는 경쟁 제한 해소를 위해 좀더 노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중복 노선 운수권과 슬롯(특정 시간대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 중 상당수를 유럽에 기반을 둔 외항사에 넘기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유럽 주요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산 점유율은 노선별로 69~100%에 달합니다. 각 노선별로 경쟁하는 외항사의 점유율은 낮습니다. EU가 우려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따라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중복 노선 중 일부를 외항사에 내주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일 겁니다. 이를 통해 점유율에서 유의미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렇게 되면 EU의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입니다. EU의 벽을 넘는다면 미국과 일본의 벽을 넘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겁니다. 대한항공은 과연 업계의 예상대로 유럽 노선 일부를 내놓을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제시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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