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사업자 SK브로드밴드와 미국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분쟁을 끝내고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전환한 이후에도 통신업계에선 이와 관련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통신사로선 유사한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불리한 조건에서 다퉈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통신사가 망 사용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용자들은 다른 통신사로 떠날 수 있고, 그렇다고 서비스 중단이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간 규제당국의 제재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법제화를 통해 양측이 합리적 수준의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냈는데?" vs "공짜는 없다"
올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망 사용료는 쟁점으로 부각됐다. 구글코리아의 김경훈 사장은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내느냐'는 질의에 "미국에서 접속할 때 내고 있다"며 "인터넷에 최초 접속할 때 접속료를 내고 나면 그다음에 데이터는 어디든지 흐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국제적 협의"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또한 자주 불러오는 유튜브 영상 같은 것이 있으면, 그 영상을 우리나라에 있는 캐시서버에 저장한다"며 "통신사의 통신비를 아껴드리기 위해 저희 돈으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의 전송은 당사자간 대가성 거래를 수반한다는 게 통신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 시장을 예로 들면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에 창고(캐시서버)를 두고, CJ대한통운과 같은 한국 배송업체(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상품(유튜브)을 최종 전달한다면, 이용대가를 내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1심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인터넷 망은 유상성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법제화 필요"
사정이 이렇지만 국내 통신업계는 구글 유튜브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제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한다.
사실상 전국민이 사용하는 유튜브를 상대로 협상이라는 것을 하려면 서비스 중단과 같은 카드도 꺼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간 이용자 이탈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규제당국의 제재도 불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유튜브 앱의 국내 월 사용자(MAU)는 4624만명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 사업자가 특정 CP(콘텐츠 서비스 제공자)의 서비스 중단 등의 조치를 하게 되면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김영섭 KT 대표도 국감에서 "투자한 사람이 사용자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고 이치"라며 "저희들이 받으면 너무 좋지만 구글이라는 거대한 기업과 저희의 힘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트래픽이 점점 증가하는 시대에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망 투자에 대한 위축이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법제화를 통한 신속한 분쟁 처리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귀환과 함께 최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지명된 브렌던 카가 유튜브 같은 빅테크의 망 사용료 지불을 주장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법제화의 계기 자체는 마련됐다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일명 무임승차 방지법)이 발의는 됐으나,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망 사용료 논쟁은 대형 CP와 국내 ISP(인터넷서비스사업자)간 협상력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실패로 이어지고 있다"며 "공정하고 자율적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