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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치! 나도 화가다

  • 2019.05.31(금) 10:06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회색빛 삭막한 공장지대도

따뜻한 공간으로 변한다.

펜과 종이, 수채화 물감만으로

나만의 정서를 담은 그림을 그린다.

동네와 건물, 거리, 시장, 풍경 등

일상 모습 전부가 소재가 된다.

가장 가까운 내 주변을 그리는

어반스케치(Urban Sketch) 얘기다.

수요일 저녁시간 백승기 작가가

수강생들에게 어반스케치를 가르친다.

"어반스케치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누구나 쉽게 접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어반스케치는 내가 사는 동네의

익숙한 거리와 골목이 소재가 되는데

친숙한 만큼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은 떨어져도

그리는 사람의 감성이 전달되는 만큼

많이들 배우는 것 같아요."

"펜과 수채화 물감을 이용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나가서 그릴 수 있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그림을 점수로 받다보니

점수를 잘 받지 못하면 두려움이 생겨요.

물론 그림을 잘 그리면 좋지만

기술적으로 잘 그리진 못해도

나만의 감성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 수강생들도 처음엔

제 화풍을 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감성이 스며든

본인의 그림을 표현하게 됩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 그리는 그 시간을 자체를

즐기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처음 배우는 수강생들에게

이런 말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테크닉보단 제 감성을 나눠드려요.'"

김대현 씨는 어반스케치를

배운 지 한 달째가 되어간다.

"은퇴 후 무엇을 배울까 고민했는데

아는 지인의 추천으로 시작했습니다.

천호동에서 문래동까지 먼 거리지만

수업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아직은 많이 어설프지만

제 주변 일상을 기록하고

남기는 것 자체가 정말 좋습니다.

얼마 전에도 늦은 오후

을지로 공구상가를 찾아

셔터가 내려진 도시의 적막함을 그렸죠.

저처럼 처음 배우는 분들은

하얀 백지에 과연 무엇을 그릴까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번 용기를 내서 그려보세요.

나만의 감성이 담긴

멋진 그림을 만날 수 있답니다."

윤은화 씨는 예쁜 꽃을

그리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가

어반스케치의 매력에 푹 빠졌다.

"5개월째 배우고 있어요.

그림 그리기는 물론이고

여행도 좋아하는 편인데

어반스케치가 딱 맞았어요.

물론 사진도 좋지만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여행 중 느껴지는 저만의 감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매력이 있어요.

펜과 수채화 물감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물 농도와 물감을 섞어 나타내는

저만의 색상이 너무 재밌어요.

어반스케치를 배우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집중력도 생기고

덕분에 갱년기 없는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반스케치를 가르치는 백 작가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리다가

부모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죠.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운 건

고등학교 때 미술부에 들어가면서였죠.

어릴 때부터 꿈은 화가였는데

일찍 결혼을 하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꿈 대신 일러스트를 그렸어요.

20대 그 시절 40살이 되면

화가의 꿈을 다시 펼치겠다고 생각했죠.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겁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꿈을 이룬 정신적 행복감이 큽니다.

40대 중반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7년째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데

막상 화가가 되니 고민이 시작됐어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죠.

그때 고민의 길을 열어준 글이 있어요.

'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인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아름답지 않아도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설령 남들이 보기엔 불편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 또한

화가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언젠가 작업 중에 잠시 문 앞에 나와

따뜻한 봄 날씨를 즐기고 있었는데

바로 앞 횡단보도에 겨울 파커를 입고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이 보였어요.

술에 취한 건지 몸이 부실한 건지

그 걸음걸이는 세상 희망 없이

무거운 삶을 한발한발 힘겹게

내딛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앞니가 몇 개 빠진 채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분의 눈은

뭔가 서러움과 경계가 뒤섞인

두려움으로 제겐 느껴졌어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봄이 왔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추운 겨울이구나

이런 생각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백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해외 전시회를 열었다.

'제 작품들을 SNS에 올리곤 하는데

외국친구 중 한 분이 좋게 봐 주셔서

베니스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믿기지가 않아 직접 베니스를 찾아가

관계자들을 만나 확인도 했어요.(웃음)

전시 중 베니스 시장도 방문했는데

도무지 실감이 안 났어요.

인지도가 있는 작가도 아닌데

원로작가들도 많이 칭찬해줬어요.

사실 다른 이들의 인정도 중요합니다.

그만큼 내 그림을 알리고

인정받으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단순히 제 만족감으로 그리는 그림은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프로작가라면 비즈니스적인 면도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백 작가는 내년에도

베니스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숲의 정령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숲

품었던 생명은 멸종위기로 내몰리고

땅은 황폐화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런데 숲의 정령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희망을 싹 튀우고

분노와 울분, 애증이 가득한 땅에

다시 생명이 돌아와 평화롭게 숨 쉬는

그런 숲이 되는 바람을 담고 있어요.

사람은 숲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 일부이기 때문에."

백 작가의 작업실 문엔

'나는 화가다'라는 글귀를 담은

강렬한 작품이 걸려있다.

"열심히 하다보면

분명히 기회는 찾아옵니다.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고민을

깊이 하다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제 목표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 겁니다.

10년을 내다보며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이 가득한

눈부신 신록(新綠)의 계절을 맞아

가볍게 소풍 가는 마음으로

김밥에 음료수, 펜과 물감 하나 챙겨

새하얀 종이 위에 나만의 감성으로

이 계절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

나도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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