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당시 이석채 KT 회장은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취임 인사를 갔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일하던 방통위 공무원들이 대부분 일어나 이 회장을 맞이한 것이다.
일반적인 갑을 관계로 따지자면 규제기관은 '갑', 기업은 '을'이다. 때문에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와도 공무원들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행시 7회인 이 회장의 경우는 달랐다. 게다가 이 회장이 방통위 전신인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이 광경은 당시 통신업계에 회자됐다.
그로부터 1년여 뒤 LG유플러스도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의 이상철 부회장을 CEO로 영입했다. 정략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공무원 출신의 이 부회장 영입효과가 컸다는게 LG그룹 내부 평가다. 특히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나이가 70대 였던 만큼, 비슷한 연배의 CEO가 와야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인식들이 강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LG 통신3사가 합병하기 전, 이상철 부회장 또한 영입되지 않았을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KT, SK텔레콤, LG텔레콤 CEO와 오찬을 함께 한 자리가 있었다"면서 "오죽했으면 LG텔레콤 대표격으로 행시 출신인 이정식 LG파워콤 사장이 참석 했겠느냐"면서 기업과 규제기관 간 관계성립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때문에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를 바라보는 규제기관의 시선이 어떨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규제기관 이슈 수두룩
방송통신 사업은 하나 부터 열 까지 모두 규제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KT가 갖고 있는 규제기관 이슈만 해도 수두룩하다.
우선 위성 매각문제를 되돌려 놔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무궁화 3호 위성을 홍콩 업체에 매각한 KT에 대해 매각 계약을 무효화할 것을 통보했다. 또 위성 서비스 제공용으로 할당한 주파수 일부 대역을 회수하기로 했다. 대외무역법에 따라 적법하게 수출 허가를 받지 않고 홍콩 위성사업자인 ABS에 매각한 것은 법규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T는 ABS와 협상해 무궁화 3호 위성을 되사와 직접 위성을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가격 등의 이유로 ABS와 재매입 협상에 실패해 자칫 분쟁으로 번지면 국제 중재 절차까지 밟아야 할 수도 있다.
KT그룹과 나머지 유료방송사간 분쟁도 해결해야 할 이슈다. 정부는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을 세우고 유료방송 시장의 규제 일원화에 나섰고, 국회에도 관련 법안들이 상정되면서 KT그룹 미디어 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유료방송 점유율 합산규제로 요약되는 이 법안은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을 동일 서비스로 보고 한 사업자가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사람이 CEO로 오느냐에 따라 규제 이슈가 달라지진 않지만, 정서상 기업과 규제기관간 관계는 무시할 수 없다"면서 "내년 취임할 황창규 회장과 규제기관이 상호 관계를 얼마만큼 쌓아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출신 CEO, 삼성전자와 관계는
삼성전자는 KT의 중요 이해관계자다. 가장 큰 규모의 단말기 제공업체이자 각종 통신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공급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때문에 상호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다. 이석채 전 회장은 아이폰 출시로 인해 삼성전자와의 초기 관계가 사실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출신 CEO가 들어설 경우 KT-삼성전자 관계가 복원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관련 황 내정자는 "(삼성을)떠날 때 인연이 끊어졌다.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밝혀, 삼성전자 출신이라고 달라질 것 없다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개혁연대는 "황창규 후보자는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온 인물로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KT의 관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는 매우 밀접한 사업적 연관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기간통신사인 KT와 글로벌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가 유착된다면 관련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다. 과거 삼성전자 출신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통신산업 정책이 지나치게 제조사 위주로 추진됐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는게 경제개혁연대측 주장이다.
향후 황 내정자가 삼성전자와의 대응에 있어 어떤 전략을 구사할 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