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된 지 3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룹 총수의 현장 복귀로 경영쇄신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멈춰있던 카카오의 시계가 다시 돌아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5부(재판장 양환승)는 3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범수 위원장의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법원이 지난 7월 23일 김 위원장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101일만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므로 형사소송법 제96조에 따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김 위원장의 주거를 제한하고 보증금 3억원과 소환 시 출석,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달았다. 김 위원장은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피의자, 참고인, 증인으로 신청되거나 채택한 사람을 만나거나 법정 증언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보석 심문기일에서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사업을 하면서 수백번 넘게 회의했지만 불법이나 위법한 것을 승인한 적은 없다"고 호소했다.
SM엔터 시세조종 혐의...檢과 치열한 공방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격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하기 위해 시세를 조종하는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약 2400억원을 동원해 SM엔터 주식을 장내 매집하면서 총 553회에 걸쳐 고가에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0일 열린 두 번째 공판기일에서 검찰과 김 위원장 측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목적이 있었는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만난 것도 대외적으로 카카오를 드러내지 않고 공개매수를 저지해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 위한 의도라고 봤다. 특히 김 위원장의 "평화적으로 가져와라"라는 발언을 문제로 삼았다.
반면 김 위원장 측은 당시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이들 중 김 공동의장의 '가져오라'는 단어 자체를 들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맞섰다. 대항공개매수를 비롯한 방안을 논의하거나 승인한 적 없으며, 오히려 하이브에 지분을 넘기고 협상하는 안을 제시했다는 게 김 위원장 측 주장이다. 이에 검찰은 방 의장의 증인 채택을 요청했다.
총수 복귀로 한시름 돌린 카카오
김 위원장의 복귀로 카카오는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카카오는 계열사를 다수 정리하는 등 강도높은 쇄신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고 의사결정권자이자 최대주주인 김 위원장의 부재로 계열사 정리가 멈춰서면서 쇄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카카오의 새 먹거리 AI(인공지능) 사업 추진에도 창업주인 김 위원장의 판단이 절실하다. 카카오는 지난 22일부터 3일간 개발자 컨퍼런스인 '이프 카카오 2024'에서 대화형 AI 서비스 '카나나'를 공개한 바 있다. AI 후발주자인 카카오의 AI 서비스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발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한편 이날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남색 정장 차림으로 나온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단 경영복귀 시기나 시세조종 혐의 등 취재진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