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KT 신임 회장에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내정됐다. 황 전 사장 내정은 회장 공모가 시작될 때부터 불거진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총자산 35조원의 거대 통신사 KT를 이끌게 된 황 신임 회장 앞에는 그만큼 해결해야 할 현안들도 켜켜이 쌓여있다. 내부 갈등을 봉합해야 하고, 악화된 실적도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KT의 미래 비전을 위해 먹거리를 찾고, CEO 리스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배구조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황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KT 임직원들은 지난 9월 2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열린 'LTE-A 넘버원 결의대회'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는 이른바 '황금주파수'라 불리는 1.8㎓ 인접대역 주파수 확보를 자축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연단에 선 이석채 전 회장은 "헌신하고 마음 졸이고 매일 매일 애타게 보낸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격려로 운을 띄웠다. 숙원이던 광대역 주파수 확보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면서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믿고 따라온 부하 직원들을 다독이는 훈훈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자기의 울타리, 회사, 집이 무너져가는데도 바깥에다 대고 회사를 중상모략하고 회사가 어쨌다 저쨌다 끊임없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며 돌연 비난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0분 정도의 발언 시간 동안 이 전 회장은 작심한 듯 일부 임직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상모략 하려면 나가라”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내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본인에 대한 퇴진설을 부인하는 동시에 일부 사내 반대 세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올레와 원래로 나뉜 KT..조직력 와해
이 전 회장은 축하연에서 왜 이런 과격한 말들을 내뱉었을까. 원인을 따져보면 지금의 KT가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된 배경과 맥을 같이 한다. 바로 내부 조직원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재계 서열 11위(공기업 제외) KT그룹의 주력 KT가 흔들리고 있는 원인은 이 회장을 비롯해 외부에서 들어온 경영진이 기존 조직문화와 섞이지 못해 경쟁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란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분열된 조직을 추스르고 땅에 떨어진 임직원 사기를 끌어 올리는 것이 새로운 KT 사령탑을 맡은 황 내정자의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이유다.
KT의 내부 갈등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원래KT'와 '올레KT'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취임 직후 남중수 전임 회장이 만들어 놓은 유선 '쿡', 무선 '쇼' 브랜드 체제를 '올레'라는 새 이름으로 바꿨다. 이를 놓고 KT 내부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을 맡기 이전부터 일했던 임직원을 원래KT로, 이 회장 이후 영입된 인사를 올레KT라고 비꼬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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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전 회장은 취임 이후 ‘영ㆍ포 라인’ 등 정권차원의 낙하산 인사들을 영입하고 고위임원과 고문 등으로 기용했다. 이 비전문가들이 KT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KT 고유의 조직력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T 안에서 이 전 회장의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 인물은 36명에 이른다. 이는 계열사 임원을 포함한 전체 임원(180여명)의 20%를 차지한다.
차완규 KT노동조합 정책실장은 "황 내정자가 1차로 해야 할 일은 조직 안정화"라며 "이 전 회장이 펼쳐놓은 위험 요인을 순리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올레와 원래' 두 갈래로 나뉘어진 조직을 봉합하기 위해선 투명하고 합리적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전 회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전문성과 투명성을 우선으로 삼는 인사 원칙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검증된 내부 출신 인사를 활용하고 외부 인사를 받아들일 때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IT 전문가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낙하산 인사 등 몸집 줄이기 촉각
황 내정자가 '무노조' 삼성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KT 노조와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지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문제다. KT에 삼성의 관리경영을 접목시킬지 벌써부터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KT노조도 이러한 측면은 다소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차 정책실장은 "무노조의 삼성 문화가 접목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라면서도 "황 내정자가 KT 수장으로 오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은 그만큼 KT노조의 역사를 알고 있고 본인도 노조를 동반자로서 인정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내부 추스리기 차원에서 황 내정자를 바라보는 대내외의 시각은 현재로서는 기대반 우려반이다. 지난 17일부터 KT 업무 파악에 들어간 황 내정자는 KT임원들에게 "외부 인사청탁을 근절하고 인사 청탁이 있을 경우 처벌하겠다"며 "KT의 방만경영을 끝마치고 KT 임원들이 앞장서서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 달라"고 밝혔다. 내부 조직원들이 공감할만한 합리적 인사를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관련업계에서는 황 내정자 역시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외부 인사 영입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 벌써부터 KT 안팎에서는 황 내정자가 전직 차관급 관료 출신 인사를 통해 인사를 조각 중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일이 현실화될 경우 또다시 낙하산 인사 문제가 불거지며 KT 조직의 사기 저하와 분열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