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가상자산 혹한기 속에서도 신중하게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한다. 그룹 차원에서 자체 발행할 예정이었던 'SK코인'은 뒤로 미루고 NFT(대체불가능토큰)와 가상자산을 담을 수 있는 지갑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SK코인' 발행, 시장 침체에 연기
SK그룹은 일찌감치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관심을 가졌다. ICT·반도체 출범 후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가 처음으로 투자한 기업은 가상자산거래소 코빗이었다.
SK스퀘어는 코빗에 9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5%를 인수하고, 업무협약을 맺은 후 블록체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SK그룹의 블록체인 사업 구심점은 SK플래닛이다. SK플래닛은 지난해 4월 싱가포르에 스코디스(SCODYS)를 설립했는데, 이는 OK캐쉬백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자체 가상자산 프로젝트 'SK코인(가칭)'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는 가상자산 발행(ICO)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 등 해외 법인을 통해 우회하기 때문이다.
SK코인 생태계를 확장할 서비스로는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가 지목됐다. SK텔레콤은 올해 초 이프랜드 내 재화를 실물로 연계하기 위한 가상자산 기반 경제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가 지나도록 SK코인은 발행되지 못했다. 가상자산거래소 FTX가 파산하면서 전반적으로 시장이 침체했고, 위믹스 상장폐지에 이어 김남국 사태까지 터지면서 부정적 여론이 커진 영향이 컸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블록체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시기를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FT 멤버십 '로드투리치'로 방향전환
불확실한 시장 상황이 계속되면서 SK플래닛은 SK코인 발행을 미루는 대신 유틸리티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방향을 틀었다. 유틸리티 NFT는 홀더(보유자)에게 실제 서비스와 혜택을 제공하는 NFT다.
SK플래닛은 지난달 OK캐쉬백에 NFT를 접목한 멤버십 서비스 '로드투리치'를 출시했다.
일반적으로 한정판으로 NFT를 민팅(발행)하는 여타 프로젝트와 달리 로드투리치의 '래키 NFT'는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캐릭터 NFT인 래키가 부자가 되는 여정으로, 퀴즈를 풀거나 퀘스트 수행을 통해 래키의 레벨을 올리면 OK캐쉬백 포인트를 비롯한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이용자는 'TEM NFT'를 조합해 직접 혜택을 설계한 멤버십을 만들 수 있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개별 혜택을 담은 TEM은 홀더가 직접 획득할 수도 있고, 홀더 간 2차 거래도 가능하다.
쟁글 리서치에 따르면 로드투리치의 최우선 과제는 MZ세대를 OK캐쉬백의 장기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인데, 개개인의 니즈에 맞는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 락인(Lock-in)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SK플래닛·SK텔레콤, '지갑' 사업확대
로드투리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상자산을 담는 탈중앙화 지갑 '업튼 스테이션'이 필요하다. 업튼 스테이션은 개인 키를 분산 저장해 보안과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하고 보관, 전송 등 지갑 고유 기능 외에도 커뮤니티 채널을 지원한다.
업튼 스테이션은 아발란체의 서브넷을 활용해 만든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업튼(UPTN)'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SK플래닛은 업튼 생태계 확장을 위해 SK그룹 관계사들과 손잡고 또 다른 NFT 발행을 준비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블록체인 기술선도적용 사업에 선정된 '티켓 NFT'도 그중 하나다.
SK플래닛 관계자는 "OK캐쉬백 멤버십을 시작으로 업튼스테이션의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단계로, 하반기에는 별도의 마켓 플레이스 같은 것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SK플래닛과 별도로 NFT와 지갑 사업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은 안랩블록체인컴퍼니, 아톰릭스와 함께 웹3.0 지갑을 개발하고, NFT 작품 거래 플랫폼인 마켓플레이스 '탑포트'에 연결했다. 업튼 스테이션과 달리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포크(수정)한 SK의 사이드체인을 사용한 지갑이다.
현재 SK텔레콤은 탑포트에 내장된 웹3.0 지갑을 별도로 분리하는 작업을 마치고 서비스 출시 시기를 살피고 있다. 이더리움을 비롯한 여러 메인넷을 지원하고, 토큰증권부터 CBDC(중앙은행발행디지털화폐)까지 전부 아우르는 지갑 서비스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가상자산 지갑과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에셋증권과 손잡고 토큰증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