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0주년기획 [DX인사이트]
"운송거리 단축·비용 절감 효과 확실"
김재남 KT 디지털물류사업TF장 인터뷰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KT 서부물류센터. KT 물동량의 60%가량을 취급하는 이곳에 인공지능(AI) 운송 플랫폼 '리스포'가 도입된 건 2년여 전이었다. 리스포는 모빌리티 빅데이터와 AI 기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최적화된 배송 경로와 운행 일정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서부물류센터는 휴대폰 대리점를 비롯해 KT 지사·지점 등 약 2000곳에 휴대폰·셋톱박스·모뎀·엑세스 포인트(AP) 등을 공급한다. 매일 50여대의 배송 차량이 이곳을 드나든다.
이 가운데 리스포를 가장 먼저 적용한 분야는 휴대폰 배송이다. 전체 물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뿐 아니라 운송 경로도 가장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곳 서부물류센터에서는 서울·경기·인천·강원권까지 매일 평균 300여개 대리점에 휴대폰을 공급하고 있다.
과거 서부물류센터에서는 대리점별로 담당 배송 기사를 지정하고 이에 따라 업무를 분배했었다. 하지만 대리점들이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다 보니 일부 기사들에게 업무량이 몰리는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리스포를 적용하면서부터는 물동량·운송경로 등에 맞춰 업무를 분배하고 있다. AI가 도로 상황·배송 기사 거주지 등을 고려해 운송 경로를 짜 안내하면 배송 기사는 정해진 시간에 휴대폰을 배송하고 집 근처에서 바로 퇴근하는 식이다.
종이인수증도 리스포 도입 후 전자인수증으로 바꿨다. 덕분에 배송기사들은 인수증 분실이나 훼손 걱정을 덜었다. 전자인수증은 대리점주에게도 도움이 됐다. KT는 배송 기사가 배송지에 물건을 전달하고 전자인수증에 사인을 받으면 자동으로 다음 배송지로 도착 예정 시간 문자가 발송되도록 했다. 대리점주들이 배송 기사의 도착시간을 기존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DX 적용했더니 운송비용 15% 절감"
KT의 물류 사업은 기존 커넥티드카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커넥티드카는 차량 시스템과 무선통신망을 연결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을 말한다. KT는 지리정보체계(GIS)·내비게이션 등 20여년간 쌓은 업력을 바탕으로 430만대의 차량 정보 등 국내 최대 수준의 모빌리티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김재남 KT AI 모빌리티 사업단 디지털물류사업프로젝트 TF장(상무)를 최근 KT송파사옥에서 만났다. 김 상무는 "기존의 물류는 아날로그 중심의 사업이라 디지털화가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며 "KT의 비전이 회사 기술로 다른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것인 만큼 회사 역량을 활용해 AI 물류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KT가 보유한 물류 데이터도 플랫폼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 KT는 대리점·지사·협력사 등에 휴대폰이나 셋톱박스 등 통신 물류를 공급하기 위한 자회사 KT링커스를 두고 있다. 리스포 플랫폼을 가장 먼저 적용한 곳도 내부 물류센터였다. 데이터 확보뿐 아니라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실제 현장에 플랫폼을 적용해 본 결과 운송 거리 측면에서는 18%를 단축할 수 있었고 비용 역시 15%가 절감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를 통해 물류 플랫폼 사업화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리스포가 가진 특징 중 하나는 맞춤형 옵션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송거리와 시간·상하차 시간·물류센터 오픈 시간·물동량 등 이용 기업의 요구사항이나 다양한 물류 유형에 맞춰 58개의 최적화 옵션을 제공한다.
"2~3년 뒤 많은 게 달라진다"
KT는 리스포뿐 아니라 AI를 토대로 물류센터 운영솔루션인 '리스코', 화주와 차주의 실시간 매칭 플랫폼인 '브로캐리' 등 3개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롯데온·GS25·이마트24·쿠팡 등 전국 25개 대형 유통사에서 활용되고 있다.
기업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정재봉 롯데온 그로서리운영팀장은 "리스포를 도입하면서 운행 거리는 최대 22%, 운행 시간은 최대 11%를 개선할 수 있었다"며 "한단계 발전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롯데온은 롯데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전국 70여개 롯데마트에 리스포를 적용하고 있다.
디지털 물류 기술이 현장에 속속 도입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물류 분야 자체가 디지털화에 보수적이다 보니 효과를 알면서도 도입을 주저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물류는 고객사 입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혁신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을 우선하게 된다"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있어도 지금의 안정적인 운영이 무너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물류가 무너져버리면 회사에서 감당해야 하는 손실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해관계자가 많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물류센터 운영사부터 택배사·화물트럭 차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선뜻 디지털화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KT는 해당 기업의 실제 물류 데이터를 받아 예상되는 개선 효과를 설명하는 식으로 잠재 고객을 설득하고 있다. 그동안 확보한 레퍼런스 역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 상무는 "물류 시장이 워낙 큰 시장이다 보니 한번에 확 바뀌진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2~3년 뒤에는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시장 넘어 글로벌로 확장
KT는 2021년 디지털물류 전문 자회사 롤랩을 설립하며 물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는 3대 물류 플랫폼 출시를 통해 사업을 본격화했다. 올해는 디지털 물류사업의 매출목표를 1500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이다. 2025년에는 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는 해외로도 사업 영토를 넓힌다. KT는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래스(MWC) 2023'에서 싱가포르 통신사 싱텔과의 협업 계획을 밝혔다.
오는 9월 싱가포르에서 KT의 AI 기술에 싱텔의 지리정보시스템(GIS)·IT 솔루션을 결합해 운송 최적화 솔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방침이다. 김 상무는 "국내만 봤을 때는 빠르게 성장한다 해도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리 글로벌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싱가포르를 글로벌 진출 첫 국가로 정한 건 나라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이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비슷한 환경을 갖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김 상무는 "싱가포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 APAC 시장은 우리나라와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쪽을 우선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KT가 생각하는 물류 사업의 방향은 물류의 자동화·무인화까지 이어진다. 커넥티드카·모빌리티 사업에서 물류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한 만큼 회사의 자율주행 등 역량을 물류 사업에서도 십분 발휘하겠다는 포부다.
김 상무는 "아직은 먼 얘기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물류에서 무인화·자동화 이런 부분들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이를 누구보다 빨리 물류 시장에 도입할 수 있는 회사는 KT그룹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류의 경우 모빌리티뿐 아니라 회사의 로봇 사업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것들이 시너지를 내면 우리 시장에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