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과거 아버지들은 늦은 밤 술에 취해 퇴근하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여겼던만큼 무조건 참석해야 했던 탓에 많은 직장인들은 늘 숙취 속에 살아야했습니다. '컨디션'이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끈데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컨디션은 숙취에 시달리던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였습니다.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했죠.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깔려있었습니다.
제품 타깃 '명확'…실제 직원 CF모델로
'컨디션'은 출시 당시부터 타깃을 명확히 했습니다. 바로 '접대가 많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음료'라는 카피가 컨디션이 노리는 수요층을 말해줍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만큼 만큼 술자리와 회식이 많았죠. 그 여파로 많은 직장인들이 숙취에 시달렸습니다. 컨디션은 이런 직장인들을 노렸습니다.
눈여겨 볼 부분은 컨디션 출시 광고입니다. 당시 제일제당 제약사업부(현 HK이노엔)은 종전과 다른 광고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할 경우 첫 모델로는 유명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컨디션의 첫 TV 광고 모델은 달랐습니다. 제일제당 제약사업부 즉, 컨디션을 제조해 판매하는 자기 회사 직원을 내세웠습니다.
컨디션 첫 광고에는 강석희 현 HK이노엔 상임고문(당시 컨디션 영업본부장)과 곽달원 현 HK이노엔 대표이사 사장(당시 신입사원)이 직접 출연합니다. 유명인이 아닌 자사 직원을 모델로 기용해 직장인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더불어 익숙한 세련된 멘트가 아닌 어설픈 멘트 처리로 친근감을 줍니다. 이는 '당신과 같은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숙취해소 음료'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겁니다.
게다가 제조회사의 직원이 직접 출연한 만큼 신뢰감을 주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도 컨디션의 광고 전략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1993년 11월 16일자 매일경제신문에는 '自社員 CF기용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시 제일제당의 컨디션 광고에 회사 임직원을 출연시킨 것을 기사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3040넘어 영역 확장…MZ세대 잡는다
스테디셀러들은 '브랜드 노후화'가 늘 걱정입니다. 세월은 가고 트렌드는 급속도로 변하는데 브랜드는 그대로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브랜드 노후화를 탈피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컨디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컨디션은 이제 출시 30년째를 맞습니다. 그동안 경쟁제품들이 쏟아졌죠. 그럼에도 컨디션은 '부동의 1위'입니다. 컨디션이 1위를 고수하고 있는데에는 혁신의 마케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보통 특정 연령층을 겨냥해 출시한 제품은 소비자들이 한정됩니다. 컨디션은 출시 당시 3040세대 직장인이 집중 타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음주 연령과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컨디션은 이에 맞춰 발빠르게 진화합니다. 지금은 MZ세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남성과 여성을 아우를 만큼 브랜드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컨디션은 가수 싸이와 자이언티를 비록해 방송인 유병재, 배우 박서준, 래퍼 머쉬베놈 등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를 이끄는 연예인들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자사 브랜드를 콘텐츠화 한 '브랜디드 콘텐츠'도 선보입니다.
HK이노엔은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체 제작한 '환생연애'를 공개했습니다. '환생연애'의 러닝타임은 6분입니다. 짧은 영상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원하는 MZ세대가 타깃입니다. '환생연애'는 두 남녀가 해피엔딩을 맞기까지 컨디션을 되돌려 소개팅을 수차례 반복하는 타임루프 드라마 형식의 브랜디드 콘텐츠입니다. '환생연애'는 공개 이틀만에 조회수 56만회를 돌파하는 등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협업
브랜드 노후화를 막기 위한 컨디션 마케팅은 각종 협업에서도 나타납니다. HK이노엔은 지난 2016년 카카오와 손잡고 모바일 대리운전 호출 서비스를 연계한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컨디션에 붙어있는 스크래치 카드를 긁으면 대리운전비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이벤트입니다. 음주와 대리운전 사이에 컨디션을 매개체로 넣어둔 겁니다.
지난해에는 인기 유튜버와 랜선 연말 홈파티 콘셉트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습니다. 컨디션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박서준과 함께하는 랜선포차와 팬미팅을 열기도 했죠. 이 모든 것이 숙취해소 음료 시장에서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들을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스크래치 카드 이벤트는 기존의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랜선 파티 등은 새로운 고객들을 위한 마케팅인 셈입니다.
컨디션의 마케팅 영역 확대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이마트24와 협업, 출시한 '속풀라면X컨디션'을 선보였습니다. 속풀라면은 이마트24가 2017년 출시한 자체개발 상품(PL)입니다. '속풀라면X컨디션'은 속풀라면의 국물에 헛개와 강황 등 컨디션EX5 농축액을 추가한 것이 특징입니다. 해장과 숙취해소제의 결합으로 애주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컨디션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하기 위해 젊은 세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에 걸 맞는 마케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가꿔가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또 어떤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요? HK이노엔에서 컨디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조유진 브랜드매니저(BM)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컨디션과 동갑…부끄럽지 않은 친구 되겠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HK이노엔에서 컨디션 브랜드매니저를 맡고 있는 조유진입니다.
-초기 컨디션 광고에 사내 직원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컨디션 출시 당시 광고시장에서는 광고에 유명 연예인이 등장해야하는 게 일종의 공식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숙취해소 음료'라는 인식을 새롭게 심어줘야 했던 컨디션은 발상을 전환해 실제 임직원들을 모델로 활용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일반인 모델을 활용해 실제 있을법한 이야기로 풀어나감으로써 컨디션을 실제로 언제,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전달하며 더욱 공감을 높이 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접대 및 회식자리가 많았던 당시 직장인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광고에는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된 당시 제일제당 제약사업부(현 HK이노엔)의 신입사원부터 현 강석희 상임고문 등 10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출동했습니다. 심지어 광고에 등장하는 사무실도 실제 업무를 보던 사무실을 써서 정말 주변의 사례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최근 광고에는 박서준, 머쉬베놈, 이도현, 고민시 등 트렌디한 스타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소비층 타깃이 직장인에서 젊은 세대로 바뀐 것 같습니다.
△컨디션은 1992년 3040세대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출시했습니다. 음주 전후 간편하게 숙취해소제를 챙겨 먹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대표 브랜드로 1위 자리를 견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컨디션 출시 30년을 앞두고 그동안 쌓은 브랜드 자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층 확보를 위해 MZ세대에게 친근한 브랜드로 변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컨디션의 주요 마케팅 대상은 즐거운 술자리를 바라는 남녀노소입니다.
하지만 라인업별로 주요 소비자가 다른 만큼 타깃별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달리해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려고 합니다. 최근 광고를 보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익숙한 박서준은 30년간 시장을 이끈 컨디션의 대표인 드링크 제품을 소개하고 MZ세대의 대세 래퍼인 '머쉬베놈'은 해당 세대가 많이 찾는 컨디션환을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트렌디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30년 동안 만들어온 '컨디션다움'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하되 소통의 방식에 있어서는 제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전략 비결입니다. 특히 법칙과 규정이 없는 MZ세대의 특징이 마케팅 전략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컨디션 시장점유율(Market Share, MS) 1위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숙취해소 시장 규모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숙취해소 음료시장에서는 50%에 가까운 MS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회식과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숙취해소제 시장 전반이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컨디션'의 마케팅 전략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모임이 늘어나는 연말연시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모바일 메신저로만 안부를 챙겨야 하는 상황을 마케팅에도 접목했습니다. 컨디션 모바일 교환권이 비대면 상황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챙기는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카카오와의 협업을 통해 '선물하기' 등 다양한 디지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컨디션 어때?', '컨디션 잘 챙겨' 등의 일반 명사로 쓰이는 제품 네이밍 덕분에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도 수월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마케팅은 각 무엇이었나요.
△국민 배우 박서준 씨와 엠넷(M.net)의 힙합 서바이벌프로그램 '쇼미더머니9' 준우승자인 래퍼 '머쉬베놈'씨가 함께 진행한 캠페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충청도식 랩이 매력적인 머쉬베놈의 '몰러유'를 개사해 '확 깬다'라는 30년간 숙취해소 시장을 이끈 컨디션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광고의 콘셉트와 메시지는 MZ세대의 취향을 중점적으로 고려한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앞으로 컨디션이 나아갈, 지향하는 마케팅 방향은 무엇인가요.
△즐거운 술자리에는 분위기 메이커가 항상 존재합니다.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의 핵심은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간혹 재미있는 분위기에 집중하다보면 누군가는 기분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마케팅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탄탄한 기획을 바탕에 두고 선을 넘지 않는 마케팅을 통해 '컨디션'이 즐거운 술자리를 위한 분위기 메이커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담당자님에게 '컨디션'이란.
△올해로 저도 컨디션도 31살이 됐습니다. 친구죠. '대한민국을 확 깨운 30년'이라는 제품 라벨 슬로건처럼 영원한 1등 제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마케터가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