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상장 열차가 본격 출발을 알리고 있다. 마켓컬리가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자 다른 경쟁사들도 고삐를 죄고 있다. 11번가, 오아시스마켓이 따라나섰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기업공개(IPO)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다. 투자금이 고갈되기 전에 실탄을 채워야 한다. 업계는 조심스럽게 IPO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컬리에 쏠린 '눈'
현재 IPO에 가장 근접한 곳은 마켓컬리다. 상장의 첫 문턱을 넘어섰다.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지난 22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 예비심사에서 상장 적격 판정을 받았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심사 통과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다. 타 기업과 비교해 긴 시간이다. 컬리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왔던 것이 걸림돌이었다. 컬리의 핵심사업은 새벽 배송이다. 시장 선두주자로서 괄목할 만한 매출을 내왔다. 하지만 그만큼 적자 규모도 커졌다.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낮은 것도 심사가 길어졌던 원인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지분을 팔아 투자금을 확보해 왔다. 이 때문에 상장 이후 경영권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해 기준 김 대표 지분은 5.75%에 불과하다. 지분 절반 이상을 외국계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대응책으로 FI(재무적 투자자)들의 보유지분 의무보유 확약서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주주들에게 보유지분을 6개월~2년 가량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우여곡절 끝에 첫 문턱을 넘었지만 남은 숙제도 많다. 특히 컬리의 공모가가 최대 관심사다.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컬리의 몸값은 한때 4조원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지금은 2조원 미만까지 떨어졌다. 컬리는 앞으로 증권신고서 제출까지 6개월의 여유가 있다. 컬리는 시장 상황을 검토하며 최적의 시기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모든 눈길은 컬리에 모이고 있다. 컬리는 업계의 첫 번째 타자다. 후발주자 입장에서 컬리는 '가늠좌' 역할인 셈이다.
오아시스, 11번가도 달린다
오아시스 마켓도 연내 상장을 추진 중이다. 하반기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이다. 새벽배송 업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1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온·오프라인을 적절히 혼합한 전략이 먹혔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스마트 풀필먼트센터 확대 등에도 나서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상반기 실적을 반영한 증권신고서를 준비 중이다.
11번가도 주관사를 확정해 증시 입성에 나섰다. 11번가는 지난 24일 IPO 대표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과 골드만삭스를 선정했다. 공동 주관사는 삼성증권이 맡았다. 11번가에 IPO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서 11번가는 2018년 국민연금 등에서 5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당시 5년 내 IPO 추진을 명시했다. 11번가의 관건은 실적 개선이다. 영업적자가 지난해부터 계속 커지고 있다. 이는 IPO 과정은 물론 ’몸값‘ 반영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SSG닷컴은 한발 물러나 상황을 관망 중이다. 당장 상장 시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내년 상장 추진을 점치고 있다. SSG닷컴은 지난해 상장을 공식화했다. 당시 미래에셋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아직 상장예비심사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많다. SSG닷컴은 이마트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당장 무리하게 기업공개를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최적의 시기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북적이긴 하는데…
상장 열차 정거장이 북적이고 있지만 앞 길은 안갯속이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다. 증시 침체로 IPO시장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 아울러 이젠 팬데믹 특수가 끝난 상황이다. 이커머스의 성장률이 이전보다 둔화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기대만큼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무리한 상장 추진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PO 추진 기업들은 저마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관건은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 개선이다.
이커머스가 상장에 사활을 건 이유는 '실탄' 확보다. 투자금이 일정 시점에서 고갈되기 때문이다. 잇따른 출혈경쟁에 영업적자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온과 쿠팡, SSG닷컴, 마켓컬리 등 주요 업체 대부분은 여전히 적자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서 거래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이어졌다. 계속해서 접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넉넉한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절실하다. 시장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업계가 상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상장 결과에 업계의 옥석가리기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투자금 유치에 실패해 경쟁에 뒤처지는 플랫폼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커머스는 엄청난 성장세로 투자금을 유치해 왔다. 덕분에 적자인 상황에서도 무리 없이 투자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고금리 등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하면서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 상장이라는 탈출구마저도 마련하지 못하면 무너지는 플랫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며 이커머스 업계에 대한 기대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라며 "새벽배송 포기 업체도 속출하는 등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변한 시장 구조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상장이든 매각이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며 "업계가 상장을 추진 중인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