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42곳 더 있었다"…'패딩 게이트'가 남긴 교훈

  • 2025.02.15(토) 13:00

[주간유통]무신사발 '패딩 게이트' 확산
오리털·캐시미어 혼용률 엉터리 표기
검사 강화VS협력사 관리…해결책 갈려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패딩 게이트

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한창 코트와 패딩 판매에 속도를 붙이던 패션업계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한 패션 브랜드가 판매한 패딩의 오리털 함량 표기가 엉망이었다는 게 드러난 겁니다. 오리 솜털이 80%라고 표기한 패딩에 실제로는 오리 솜털이 2.8%만 들어 있었습니다. 원가 절감을 위한 행위였을 겁니다. 오리 솜털은 깃털보다 가볍고 보온성이 좋아 단가가 높습니다. 

이번 건은 제조사나 유통사, 소비자원 등이 밝혀낸 건도 아닙니다. 패딩을 구매한 소비자가 미심쩍음을 느끼고 직접 사비를 들여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검사를 맡겨 알려지게 된 사실입니다. 해당 브랜드는 물론 판매사인 무신사조차 소비자가 문제제기를 할 때까지 이 사건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패딩 전수조사에 나섰음을 알린 무신사/사진=무신사 뉴스룸

사건이 알려지면서 무신사는 무신사 내 판매 중인 제품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의 패션 브랜드 후아유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발견됐습니다. 오리털보다 비싼 거위털을 80%나 충전재로 사용했다고 밝힌 제품이 실제로는 30%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죠. 

패딩뿐만이 아닙니다. 고급 의류 소재인 캐시미어를 사용한 의류들도 줄줄이 걸려들었습니다. 무신사에 따르면 문트·바스카라·스태리아이드·데꼬로소·로시로우 등 수십개 브랜드가 부적합한 캐시미어 표기를 했다가 적발돼 5~35일간의 판매 중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가품 논란

무신사는 지난 2021년에도 곤욕을 치렀습니다. 바로 패션 브랜드 '피어오브갓'에서 시작된 가품 논란입니다. 한 소비자가 무신사부티크에서 피어오브갓 에센셜 티셔츠를 구매한 뒤 재판매 플랫폼 '크림'에 등록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품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무신사의 솔드아웃과 크림이 경쟁하던 상황에서 '가품 논란'은 크게 확산했습니다. 

결국 무신사는 피어오브갓 본사에 정품 감정을 의뢰했는데 결국 가품 판정이 났습니다. 문제는 그 뒤입니다. 무신사가 제품을 공급받은 곳 중엔 공식 유통사도 있었기 때문이죠. 최근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판매된 스투시 맨투맨 제품이 가품으로 밝혀지며 또 한 차례 가품 논란이 일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유통망 중 하나인 이마트에서마저 가품이 판매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픽=비즈워치

패딩이나 옷감의 혼용률은 일반 소비자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아예 다른 원단을 놓고 구분하는 게 아닌, 여러 소재를 섞어 옷을 만들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식별이 쉽지 않습니다. 가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상에서 '가품 체크 방법' 등이 공유되지만 정확한 진단이라기보단 경험칙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적발 사례는 대부분 제조사나 유통사의 검수 과정에서 드러나거나 소비자원 등 조사 기관의 조사에서 적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4년에도 비슷한 충전재 혼용 사태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소비자원이 조사를 주도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무신사나 이랜드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일부러 패딩을 뜯어 조사를 맡기지 않는 이상 혼용률을 속이는 것을 적발해 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가 아닌, 제조 과정에서의 문제는 '책임은 지지만 근원은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그럼 해결책은요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 여러 패션 유통사들에 문의해 봤습니다. 패션 우통사들은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제조사가 혼용률을 속이거나 가품을 섞는 건 결국 수익 때문입니다. 원가율을 낮춰 제조사가 가져가는 돈을 늘리려는 거죠. 

다른 패션 플랫폼들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다른 업계에서 시행하는 샘플링 검수의 경우 일일이 패딩을 뜯어본 후 조사기관에 맡기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검수가 진행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는 대답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제조사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게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는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그런 해결책은 결국 제조사의 신의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수익을 내도 더 많은 수익을 거부하지 못할 곳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기는 '걸리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번 일 역시 어떤 예민한 소비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모른 채 또 수만, 수십만 벌의 패딩이 팔렸겠죠.

검수는 필요합니다. 샘플 조사로는 불량품을 잡아낼 수 없다는 건 유통사들의 변명입니다. 이미 수많은 소비자들이 불량품을 잡아냈습니다. 소비자원에서도 수많은 사례를 적발해 냈습니다. 평소엔 유통사의 이름을 걸고 제품을 팔다가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가 속이면 속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자신들도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건 우스꽝스럽습니다.

이번 무신사의 전수조사 결정은 칭찬할 만합니다. 수십여 브랜드를 추가로 적발하는 건 자칫하면 무신사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지만 뚝심있게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뒤입니다. 사후약방문 격의 후속 조사가 아닌, 유통 과정에서 이런 불량품·가품들이 돌아다니지 않게 조사할 수 있는 수시 검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몰라서 당했다"는 핑계는 한 번으로 족합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