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지난 주말 무신사는 인사 소식을 하나 알렸습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전문화된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죠. 기존 한문일 대표는 글로벌&브랜드 사업 대표를 맡아 해외 시장 개척과 브랜드 진출 지원을 맡게 되고요. 박준모 29CM 대표는 무신사와 29CM를 함께 아우르는 플랫폼 사업 대표가 됐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두 대표의 각자대표 선임 소식보다 그 뒤에 따라붙은 이야기에 더 주목했습니다. 양 사업의 유기적인 성장을 위해 조만호 이사회 의장이 총괄 대표로 복귀한다는 소식입니다. 조 의장의 복귀는 지난 202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3년 만입니다.
아시다시피 조 의장은 무신사의 창업자입니다. 2003년 패션 커뮤니티 무신사닷컴을 설립해 거래액 4조원대, 매출 1조원대의 유니콘 기업이자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그런 조 의장이 경영에서 손을 뗐던 건 사실 자의에 의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남녀 갈등 이슈가 최고조에 다다랐던 지난 2021년. 무신사 역시 이슈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무신사가 여성패션 몰인 '우신사'를 론칭하면서 여성 회원에게만 쿠폰을 지급했고, 이를 항의한 남성 회원의 계정을 정지시킨 게 알려진 거죠.
결국 조만호 대표가 직접 사과문을 올리고 모든 회원에게 할인 쿠폰을 지급하면서 사태는 간신히 수습됐습니다. 하지만 이 직후인 5월. 무신사의 광고들에서 '메갈리아 손가락' 모양이 나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남혐 논란'이 또 한 번 거세게 불었고 결국 조 대표가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명분이 있다
업계에서는 조 의장의 대표 복귀는 어느 정도 예상된 행보로 보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그간 대표직을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직만을 수행하면서도 무신사의 주요 의제에는 꾸준히 영향력을 미쳐 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 대표가 보유한 무신사의 지분율은 60%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조 대표 본인도 1983년생으로 이제 40대가 된 젊은 오너입니다. 잇단 논란으로 대표직을 내놓긴 했지만 회사를 쉽게 남의 손에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논란을 덮고자 물러났으니, 돌아오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합니다. 최근 업계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간 무신사는 국내 중저가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경쟁자라 부를 만한 곳이 없을 만큼 막강한 시장 재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알리익스프레스를 필두로 테무와 쉬인까지 이른바 '알테쉬'로 불리는 중국발 이커머스들이 한국 공략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쉬인은 알리, 테무와 달리 패션 전문 기업입니다. 지난해 거래액 60조원, 순이익 2조7000억원 이상을 올린 공룡 기업입니다. 저렴한 패스트패션 라인업이 중심인 만큼 무신사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쉬인을 비롯한 '알테쉬'에서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중국 온라인쇼핑 플랫폼을 이용한 소비자 중 40.1%가 의류를 구매, 생활용품(53.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중국발 'C커머스'의 공습이 현실화되면서 무신사 역시 변화의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창업자인 조만호 대표의 복귀로 현실화했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우려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3년 만에 돌아온 창업자가 어떤 돌파구를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사공'만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돌아온 '만호형'은 중국발 이커머스의 역습에서 무신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의 마지막 편이 '왕의 귀환'이 될 지 장렬하게 전사하는 '노량'이 될 지는, 조 대표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