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이 기존 현직 회장 연임 관행을 깨고 양종희 회장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 외압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당장엔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선 KB금융 이사화의 파격이 다시 발동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파격이었을까.
조화준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은 이 후보자 선정 이유로 "현재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뜯어보면 현재의 성과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은행이라는 본원적 경쟁력을 더 키우는 동시에 AI·디지털 전환과 자본시장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금융산업의 변화를 먼저 이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인선에서 갈린 것은 '실적'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의 리딩금융을 앞으로도 리딩금융으로 이어갈 수 있느냐,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는 얘기다.
양종희 회장은 취임 이후 역대 최대 실적과 주주환원 확대, 주가 상승을 이끌며 KB금융의 리딩금융 지위를 지켜왔다.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이 신한은행과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경영 성과만 놓고 보면 연임의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결과는 뒤집혔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양종희 회장이 탄탄히 잘 다져왔지만 새로운 영역 진출이나 도전 등에서 아쉽다는 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거나 지역적 확장을 시도하거나 혹은 AI 전환에서 KB가 주도권을 가져가는 모습 등이 요구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물론 3년 만에 바꾸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도 "KB금융 이사회가 변화를 리드하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리더십을 맡긴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근 후보가 지난 14일 첫 출근길에 내놓은 메시지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후보자는 이날 "큰 성과 위에서 제가 선임된 것은 1등으로서 안주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무겁게 받아 들이고 있다"면서 "AI·디지털, 머니무브, 고령화 등 앞으로 3~5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금융그룹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어 뒤처지지 않고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리딩금융의 의미를 한 단계 더 확장했다. 그는 리딩의 의미를 "변화를 주도하고 산업의 새로운 표준과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따르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며 확실히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순이익 1위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리딩금융으로 부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이 후보는 자본시장 중심으로 흘러가는 금융환경과 생산적·포용적 금융의 역할, 이미 잘 갖춰진 비은행 포트폴리오 등을 언급하며 "이미 갖춘 기반 위에서 국내 금융그룹 1등이라는 게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앞서 윤종규 전 회장은 확고한 1등 금융그룹을 강조했다. 윤 회장 첫 임기 시작 때만 해도 KB는 지배구조 이슈와 내홍 등을 겪으면 1등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윤 회장은 재임기간 그룹을 1등으로 올려놓고 여러 M&A를 성사시키면서 이를 더 탄탄히 다지는데 공을 들였다.
3년 전 바통을 이어받은 양종희 회장은 당시 은행장을 지냈던 허인 부회장을 제치고 이례적으로 회장에 올랐다. 당시엔 비은행 부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 시기였고 이사회에서 양 회장의 보험사 사장 등 비은행 경험과 비전을 높이 사면서 이변을 만들어 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3년 후 이같은 기대감이 아쉬움으로 남으면서 이재근 후보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사회가 이재근 후보자에게 요구하는 리더십은 리딩금융을 넘어선 변화와 혁신이다. 이번 선택이 단순한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결국 이재근 후보자는 기존 전략의 승계를 넘어 변화와 혁신을 보여줘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그 책임은 차기 회장만이 아니라 이같은 선택을 한 이사회 역시 향후 성과를 통해 판단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관련기사: 이재근 택한 KB금융…'깜짝 세대교체' 더 무거운 과제 안겼다(2026년 9월14일)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지난 10여년간 몸집과 실적을 키워왔다. 하지만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함께 올라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요 5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발달 지수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 19위에서 올해 23위로 4계단 내려앉았다. 싱가포르(4위), 홍콩(5위), 일본(9위) 등과도 여전히 큰 차이다.
금융안정성과 제도적 환경, 특히 자본접근성에서 52위를 기록한 것이 순위를 끌어내렸다. 기업이나 개인의 대출 시스템 발달이 55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란 얘기다. 국내 '리딩금융'의 아성이 여전히 국내에만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3년후 또다시 세대교체와 변화를 강조하며 파격 인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해답은 나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