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31일. 청주공항에서 72인승 터보프롭(제트엔진에 프로펠러 장착) 기종인 ATR72-200기가 활주로를 내달렸다. 탑승객 46명을 태운 비행기는 제주공항을 향해 이륙했다. 국내 최초 저가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의 첫 운항이었다. 한성항공이 홀로 고군분투하던 2005년 당시 저가항공의 국내선 수송 분담률은 0.1%에 지나지 않았다.
만 9년이 채 안된 2014년 4월. 제주항공·에어부산·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진에어 등 국내 5개 저가항공의 국내선 승객수는 111만1614명으로, 대형 국적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승객수를 합친 111만1532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어 5월에는 전체 국내선 승객의 50.8%를 저가항공이 차지했다.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가 훨훨 날고 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다. 국내선에서는 이미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항공료에 노선까지 넓히면서 2명 중 1명은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는 수준에 올랐다.
김해~제주 노선에서는 72.7%, 김포~제주 노선은 59.3%의 승객이 저가항공을 이용한다. 김홍목 국토교통부 항공산업과장은 "저비용항공사의 국내선 점유율이 50%를 넘었다는 것은 항공 수요자들이 종전보다 저렴하고 편리하게 항공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국내시장 '괄목상대(刮目相對)'
저가항공이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건 2004년 설립된 한성항공이다. 이어 2005년 애경그룹이 출자한 제주항공이 제주~김포 노선에 취항했다.(2006년 6월) 또 2007년 아시아나항공과 부산지역 상공인들이 참여한 에어부산이 설립됐고, 이어 이스타항공이 출범했다. 2008년에는 대한항공이 100% 출자한 진에어가 김포~제주노선에 취항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최초 저가항공인 한성항공은 사업 초기 만성 적자와 2008년 금융위기로 2009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 이듬해 티웨이항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남에어, 코스타항공, 인천타이거항공, 중부항공, 퍼플젯 등은 출범했다가 도산하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저가항공사들은 빠르게 국내선 여객을 흡수했다. 사업 초기 안전에 대한 우려를 씻고 대형 항공사보다 20~30% 가량 낮은 요금을 제시한 덕분이었다. 국내선 점유율은 2006년 2.2%, 2007년 6.5%였던 것이 진에어와 에어부산까지 등장한 2008년에는 9.7%, 이스타항공 취항 이후인 2009년에는 27.4%로 급등했다. 이후 보유 비행기 수를 늘리면서 절반에까지 이르렀다.
각 항공사들의 매출도 빠르게 늘었다. 저가항공 중 가장 규모가 큰 제주항공은 2011년 2577억원에서 2012년 3412억원, 작년 4323억원으로 덩치를 빠르게 불렸다. 대한항공 계열 진에어는 2012년 2475억원에서 작년 2833억원으로, 아시아나 계열 에어부산은 2012년 2208억원에서 작년 2779억원으로 한 해 사이 매출이 신장했다.
◇ 해외까지 '일취월장(日就月將)'
해외로도 발을 뻗고 있다. 지난 달 전체 국제선 여객 가운데 저가항공의 분담률은 11.1% 기록했다. 해외로 나가는 10명 중 1명은 국내 저가항공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저가항공의 국제선 분담률은 2010년, 2011년만 해도 2.3%, 3.6%에 그쳤지만 이후 7.0%(2012년), 9.0%(2013년)을 거쳐 올들어 10%선을 넘어섰다.
지난달 말 황금노선 배분으로 관심을 모았던 총 90장의 한-중 운수권(주 1회 왕복운항) 배분에서 저가항공은 총 38장을 따냈다. 기존 노선 49장 배분에서 저가항공이 아예 배제된 것을 감안하면 신규노선의 4분의 3가량(74.5%)을 확보한 것이다.
항공사별로 ▲티웨이항공 3개 노선 주 13회 ▲제주항공 3개 노선 주 7회 ▲이스타항공 3개 노선 주 7회 ▲진에어 2개 노선 주 6회 ▲에어부산 2개 노선 주 5회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항공이 확보한 노선은 대부분 아직 활성화 되지 않았지만 향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했다.
저가항공은 최근에는 대형 항공기를 도입해 중장거리 노선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진에어는 보잉 777기를, 에어부산은 A330을 도입해 수 년 내 미주나 대양주 노선에 취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가항공의 활약으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기존 대형사들은 주춤한 모습이다. 대한항공은 작년 2905억원의 순손실을, 아시아나항공은 114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국내선 수요를 저가항공에 뺏긴 데다 환차손과 항공화물 감소까지 겹친 게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두번째 저가항공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