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정유사들이 선장을 교체하고 재도약에 나선다. 새로운 수장들은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신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하락 여파의 중심에 서있다. 주력인 정유사업에서 재고손실이 발생하고, 정제마진도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유사들을 이끌 뉴 리더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이유다.
◇ 정철길-문종박, 정반대 입장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정철길 전 SK C&C 사장을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으로 선임했다. 정 사장은 석유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SK에너지 사장도 겸한다.
지난 3분기 SK이노베이션은 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파라자일렌과 아로마틱 계열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화학사업에서 영업이익이 늘었고, 석유개발 사업에서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력인 석유사업에선 유가하락에 따른 재고손실 등으로 226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 사장의 선임과 함께 SK이노베이션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대외 에너지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새로운 사업 발굴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정철길 사장은 대한석유공사 출신으로 과거 SK에서 석유개발사업을 담당한 바 있다. SK C&C 사장 시절에는 사업구조를 내수에서 해외로 확대한 바 있다. 개편된 사업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SK이노베이션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게 정 사장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문 사장은 위기에 빠진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떠난 권오갑 사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3분기까지 정유사 중 유일하게 흑자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원유 수입처 다변화와 코크스 연료 사용, 높은 고도화비율로 원가 절감 효과를 봤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 역시 떨어지는 정제마진과 국제유가 하락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 새롭게 윤활유 사업도 시작해 시장 안착 여부가 관건이다. 다른 경쟁사 사장이 부진한 실적을 개선해야 한다면 문 사장은 기존의 호실적을 지속하고, 신사업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 에쓰오일 올레핀 사업 준비
에쓰오일은 최근 김동철 고문을 수석부사장으로 복귀시켰다. 김 부사장은 30년 경력의 대외·홍보 전문가다.
에쓰오일은 올 들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대 주주였던 한진그룹이 자구책 마련을 위해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하면서 온전하게 사우디 아람코의 계열사가 됐다. 또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분기마다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누적 적자만 47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에쓰오일은 신용등급도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에쓰오일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쓰오일은 현재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울산 온산 공단에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시장에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5조원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업 추진을 위해선 정부를 비롯해 지방단치단체 등과의 협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 부사장은 30년 넘게 대관과 홍보업무를 담당했다. 따라서 현업 복귀 후 이들 프로젝트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대외 커뮤니케이션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김동철 수석부사장의 복귀는 고문 자리로는 역할 수행에 한계가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 역시 실적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 정유사업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고,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커 비상이다. 일본 기업과의 합작을 통한 파라자일렌(PX) 공장 증설도 시황 악화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다. 이 때문에 GS칼텍스는 지난 6월 임원 수를 15% 축소하고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연말 임원 인사에서는 부사장급 1명과 상무 신규선임 4명 등으로 인사 폭을 크게 줄였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실적 악화에 따른 임원 및 조직개편이 한번 이뤄진 터라 이번에는 특별한 인사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