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기차 배터리 강국이다. 가장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암초가 생겼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견제다. 특히 중국 정부는 각종 규제 장벽을 만들면서 자국 배터리 기업에게 성장 기회를 주고 있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와 향후 전망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
중국은 최대 전기자동차 시장이다. 13억 인구란 든든한 배경과 함께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는 정부 의지가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은 고속성장 과정에서 급증한 자동차와 공장 등으로 인해 심각한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베이징에서 대기오염 최고 등급인 적색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당시 대기오염 물질인 미세먼지 오염원으로 자동차 매연이 22%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중국 정부가 친환경 차량인 전기차 시장 육성에 집중하는 이유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prtsy201@ |
◇ 전기차 시장의 성지 '중국'
중국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011년 8100여대 수준이던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22만대를 돌파하며 4년 만에 약 30배 증가했다. 최근 2년 동안은 해마다 전년대비 3~4배 규모로 판매량이 늘어 성장세가 가파르다.
그럼에도 아직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0.6%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전기차 시장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500만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보조금(약 10만위안)과 세금감면(차량 가격 약 10%) 혜택을 부여하고, 1만2000개의 전기차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 자료: 중국자동차공업협회 |
특히 중국은 하이브리드 중심인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순수 전기차(EV) 위주로 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시장 역시 급성장하는 중이다. 배터리만으로 주행거리를 기존 내연기관차량 만큼 늘리기 위해선 배터리 용량 확대가 반드시 필요한 까닭이다.
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지난해 2.8GWh(기가와트시)에서 올해 4.5GWh로 성장하고, 오는 2020년에는 27.8GWh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 규모 역시 2014년 3564억원 수준에서 2020년에는 6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중국 시장을 배터리 사업 성장기지로 삼았다. LG화학은 중국 남경에, 삼성SDI는 시안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었고, SK이노베이션은 북경기차와 합작해 중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 삼성SDI 중국 시안 배터리공장(좌) 및 LG화학 중국 남경 배터리공장(우) |
◇ 규제로 견제, 치고 올라오는 BYD
중국 정부는 전기차 관련 산업을 키우면서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각종 지원으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해외 기업들이 주도한 것으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이 앞선 기술력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실제 LG화학은 중국 현지 10대 완성차 업체 중 절반 이상을 배터리 공급사로 확보했고, 삼성SDI 역시 시장 공략 준비를 마쳤다.
상황이 이렇자 중국 정부의 견제가 시작됐다. 중국은 올초부터 NMC(니켈·망간·코발트) 계열 배터리 안전성을 문제 삼고 이 계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에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반대로 자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LFP(올리빈계) 계열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에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 4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에서 국내 기업들을 제외했고, 최근에는 NMC 배터리에 대한 안전 기준을 원점에서 새롭게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하반기에는 NMC 배터리 안전 기준이 만들어져 보조금이 지급될 것으로 기대했던 국내 업체들 입장에선 악재가 지속되는 셈이다.
현재 LG화학과 삼성SDI 등은 NMC 계열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NMC 계열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 생산비용이 적고 발전용량이 크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지만 기술 발달로 인해 LFP 배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향후 전기차 배터리 등 중대형 배터리는 NMC 배터리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규제로 인한 당장의 실적 악화 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가파른 성장세도 위협 요인이다. 중국 정부가 규제 장벽으로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있어서다.
▲ 자료: 내비건트리서치 평가 |
대표 기업이 BYD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 리서치 평가에 따르면 BYD 경쟁력은 세계 6위권 수준이다. 기술력에서 앞선 LG화학과 삼성SDI보다 아직은 순위가 낮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BYD는 성장에 날개를 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95년 배터리 제조기업으로 시작한 BYD는 2003년 중국 국영기업인 친추안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전기차 시장에 진입, 배터리 뿐 아니라 전기차 부품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는 등 수직계열화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BYD가 NMC 배터리 기술을 개발해 생산을 본격화할 경우,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BYD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우리는 물론 일본 기업을 맹추격하고 있다”며 “아직까진 이들이 차지한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중국 정부가 강력한 육성 의지를 밝힌 만큼 이들의 성장세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 대부분이 배터리 핵심인 셀 기술을 단계적으로 현지 업체에 이전하는 조건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며 “향후 중국 기업들이 흡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