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1906년
선비 최익현 의병을 일으키다
1906년 6월 4일 74세의 노유 면암 최익현이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최익현은 호조참판에서 물러난 뒤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해 도끼를 지니고 상소를 올려 흑산도에 유배됐고 을미사변 후 항일운동을 전개하여 을사 5적의 처단을 주장한 바 있었다.
선생은 8백여 명으로 불어난 의병대와 함께 정읍, 순창으로 밀고 나갔으나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의 칙지에 남원에서 통분의 해산을 한 후 대마도에 감금됐고 이듬해 1월 1일 단식 끝에 순국했다.
선비 최익현 의병을 일으키다
1906년 6월 4일 74세의 노유 면암 최익현이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최익현은 호조참판에서 물러난 뒤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해 도끼를 지니고 상소를 올려 흑산도에 유배됐고 을미사변 후 항일운동을 전개하여 을사 5적의 처단을 주장한 바 있었다.
선생은 8백여 명으로 불어난 의병대와 함께 정읍, 순창으로 밀고 나갔으나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의 칙지에 남원에서 통분의 해산을 한 후 대마도에 감금됐고 이듬해 1월 1일 단식 끝에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