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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은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고 있나[여의도워치]

  • 2024.03.18(월) 14:10

19일 고려아연 주총, 대주주 영풍의 자격은
자신들이 5년전 먼저 도입한 정관변경 반대
주주환원율 68%인데 대주주가 배당확대 요구

영풍그룹 공동 창업자 집안(장씨·최씨)이 표 대결을 예고한 고려아연의 2023사업연도 정기주총이 19일 열린다. 관심을 끄는 안건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오래된 정관을 바꾸는 것이다. 

고려아연 정관에 '경영상 필요로 외국 합작법인에게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아연의 태동과 함께했을 오래된 이 문구를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우 특정한 자(회사의 주주포함)에게 신주인수 청약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로 바꾸는 것이다.

고려아연 지분 25%를 가진 최대주주 영풍은 이 내용이 '주주의 핵심적인 권리인 신주인수권이 침해된다'며 반대한다.

영풍의 뜻대로 이 안건은 주총 문턱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결의(주총 참석주주 의결권 3분의2 이상 동의)를 충족해야 하는, 바꿔말하면 3분의1이 반대하면 통과할 수 없는 안건이다. 이미 영풍(특수관계자 합산 지분율 32%)은 3분의1에 육박하는 지분을 소유했다. 전체 의결권 주식 전부가 주총에 참석한 가운데 영풍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가 만장일치로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변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안건 통과 여부와 별개로 영풍의 주장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정관 변경은 대다수 상장사가 채택하는 '표준정관'을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 대부분도 유사 내용을 정관에 담고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재원 마련 또는 재무구조 보강을 위해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자금조달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다만 제한없는 신주발행은 기존 주주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그래서 표준정관은 발행주식총수의 20% 한도로 설정할 것을 권고한다. 고려아연은 액면총액 기준 28%(기존 발행분은 차감) 수준의 추가발행 여지를 뒀다가 추후 20%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작전세력이 쥐고 흔드는 곳이 아니고서야 이 정관을 도입한다고 신주발행이 무제한 가능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영풍이 잘 안다. 영풍은 이미 5년 전 2019년 자신들의 정기주총에서 고려아연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똑같은 내용의 정관 개정을 통과시켰다. 신주발행한도는 30%로 설정했다. 더군다나 당시 영풍은 고려아연처럼 오래된 정관의 표현을 바꾼 게 아니라 아예 없던 내용을 새로 만들었다.

당시 영풍의 정관변경 이유는 '관계 법령 내용 반영 개정 및 조문 정리'였다. 고려아연의 이유도 같다. 그때의 자신들은 맞고, 지금의 고려아연은 다르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몇 년 전부터 불거진 지분경쟁 때문일 것이다. 지분경쟁이란 특수성, 즉 고려아연을 여전히 장씨 일가 지배 아래 두려는 목적 앞에 논리의 모호함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두 번째 쟁점 안건 배당은 얘기가 다르다.

고려아연은 결산배당으로 주당 5000원을 제시했다. (작년부터 도입한 중간배당으로 1만원을 이미 지급했으니 연간 주당 배당금은 1만5000원이다). 이 안건에 영풍은 결산배당금으로 5000원을 더 얹어서 1만원(중간배당 포함시 2만원)을 달라는 수정안건을 내겠다고 밝혔다.

정관변경과 달리 보통결의 안건, 즉 주총 참석주주의 과반 동의가 필요하다. 안건의 통과 여부는 주총장에서 알 수 있다. 대주주 영풍도, 고려아연 경영진도 과반의 우호지분을 확보 못 했다. 독자적으로 안건을 통과시키거나 저지시킬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이 안건 결말을 조심스레 예측해볼 작은 단서가 최근 나왔다. 고려아연 주주 중 세 번째로 지분을 많이 가진 국민연금은 지난 15일 투자목적을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로 바꿨다. 지난 2021년 11월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꾼 지 2년여 만이다. 

이 자체가 누구의 손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국민연금이 지분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바꿨다는 건 해당 기업을 비공개대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의 배당정책이나 법령위반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비공개대화에 나선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지난 2년여간 비공개대화 과정에서 고려아연이 제시한 배당정책 등 각종 조치가 자체 기준에 부합하거나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작년 초 중장기배당정책(배당성향 30% 이상 및 중간배당 도입)을 발표했고, 작년 11월에는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방안을 내놨다. 회사가 제시한 중간·결산배당 총액(3027억원)과 자사주 소각(1000억원)은 작년 별도순이익(5856억원)의 68.7%다. 흔히 얘기하는 주주환원율이다. 최근 3년간 한국기업의 주주환원율은 25%이다. 이마저도 소각을 약속하지 않는 자사주 매입도 포함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주주환원율 68.7%란 수준이 만족스러운지는 주주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이 제시한 주주환원정책과 고려아연에 필요한 성장 재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배당을 많이 준다고 무조건 찬성하진 않는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도 염두에 둔다." 국민연금 관계자가 전한 시각이다.

장기 투자자에는 연기금도 있지만, 원조는 대주주다. 고려아연 대주주 영풍의 모습은 어떤가.

고려아연이 작년말 발표한 향후 10년간 설비투자 및 현금창출능력 / 그래픽=비즈워치

고려아연은 향후 10년간 신사업(신재생에너지·2차전지소재·자원순환) 부문 12조원을 비롯한 총액 17조원의 투자를 작년 말 발표했다. 10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손 쳐도 적어도 3~4년간은 어느 정도 계획대로 할 것이다. 이 기간(2024~2027년)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Capex)과 고려아연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일 현금창출능력(EBITDA)의 차이가 약 1조원이다.

성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와 주주에 대한 환원정책, 그 사이에 고려아연 주총의 쟁점 두 가지, 정관변경과 배당안건이 녹아있다. 행동주의펀드라면 10년 아니, 3~4년 뒤의 일도 '나 몰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을 함께 고민해야 할 대주주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미 고려아연의 이사회 일원으로 참여해 내용을 꿰뚫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자신의 지갑이 비었다고 자식의 적금통장을 노리는 부모가 없듯, 수십 년을 함께한 대주주라면 당장의 이익과 회사의 성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게 타당하다. 

흔히 주주를 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투자자라 지칭한다. 고려아연이 태동할 시기부터 지금까지 50년간 대주주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영풍이 고려아연에 공급한 자금은 지분 25%에 대한 취득원가 52억원이 전부다. 물론 최근에도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을 샀다. 하지만 이는 고려아연에 공급한 자금(신주인수)이 아닌 자신들의 지분 강화를 위한 구주 인수, 그것도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다수다.

홀로 큰 자식이 더 큰 성장과 보답 사이를 고민할 때 본인 몫, 본인들의 영향력 강화만 생각하고 있다.

영풍은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 책임을 인식하고는 있는가.

공교롭게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이 시기, 기업밸류업이 유행이다. 영풍도 밸류업 흐름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가치(특수관계자 제외한 자체 지분 25%)는 2조4000억원인데 영풍의 시가총액은 8800억원이다. 영풍의 목소리가 커지는게 밸류업일까. 아님 영풍이 밸류업 대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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