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의 법적 다툼이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게임 업계에 벌어진 각종 분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게임업계 주요 인물들이 회사를 옮기거나 창업하는 등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서로 가까이 지내다가 때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에 엔씨소프트의 소송 대상이 된 엑스엘게임즈도 엔씨소프트에 몸담으며 리니지를 개발한 송재경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길게는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의 저작권 분쟁처럼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극적인 화해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게임 분쟁 한판에 20년은 각오하자
지난 7일 카카오게임즈가 '아키에이지 워'의 '리니지2M' 저작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식 반박하면서 엔씨소프트와 법적 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지난 5일 카카오게임즈와 아키에이지 워를 개발한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지 이틀 만이다.
이들의 분쟁은 극적인 화해 제스처가 없다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당장 엔씨소프트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엔씨소프트는 2021년 웹젠의 게임 'R2M'이 '리니지M'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아직까지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 중국 게임 업체의 갈등은 무려 20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지금까지도 완전한 결론이 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액토즈의 창업멤버였던 박관호 개발팀장(현 위메이드 의장)은 개발 중이던 '미르의 전설2'를 가지고 나가 지난 2000년 위메이드를 창립했고, 이 과정에서 액토즈는 위메이드 지분 40%를 보유하며 해당 IP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갖게 됐다.
미르의 전설2는 2001년 9월부터 중국에서 서비스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게임을 서비스하던 중국 업체 '란샤'가 로열티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진다. 2년이 지난 2003년 이 중국 업체는 미르의 전설2와 유사한 게임을 내놨고, 소송이 시작됐다.
그런데 나중에 이 중국 업체가 액토즈의 최대주주가 되는 독특한 상황이 다시 생겼고 이후로 법적 화해와 갈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다툼 사례에서 보이는 것들
표절 시비가 붙은 NHN(당시 NHN엔터테인먼트)과 카카오게임즈의 2016년의 사례는 흥미롭다. 표절 의혹을 받은 쪽의 반박 포인트가 그렇다.
카카오게임즈의 게임 '프렌즈팝콘 포 카카오'가 NHN의 자회사(NHN픽셀큐브)가 개발한 퍼즐게임 '프렌즈팝'을 모방한 것이란 의혹이 나왔다. 당시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자신 페이스북에서 "'매치3류'라고 불리는 이 게임 방식은 RPG, FPS처럼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며 반박한 것이다.
이번에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카카오게임즈가 내놓은 공식입장인 "동종 장르의 게임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에 대한 것은 관련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상당히 닮았다.
1년이 지나 카카오게임즈와 NHN은 화해했는데, 갈등 양상이 복잡했던 점이 눈길을 끈다.
NHN 자회사의 프렌즈팝은 라이언, 무지, 피치 등 카카오프렌즈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했고, 이 게임은 카카오 게임 플랫폼 서비스 연장 계약 건에도 물려 있었다. 게다가 당시 카카오와 NHN의 다른 자회사(케이이노베이션)는 특허 소송전도 벌였다.
올해 초에는 넥슨이 아이언메이스의 인디 게임 '다크앤다커'가 자사 신규 프로젝트 'P3' 관련 정보를 직원들이 무단 유출해 개발한 게임이라며 고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사안은 앞서 나타난 저작권 소송과는 다소 다른 측면이 있다. 다른 회사가 만든 게임이 자사 IP를 보고 따라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게 아니라, 회사 직원들이 회사에서 만들고 있던 게임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상품화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화해는 긍정적 시그널?
게임사들의 치열한 갈등은 갑자기 화해 국면을 맞을 때도 있다.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펍지(현 크래프톤)가 '포트나이트'를 선보인 글로벌 게임사 에픽게임즈를 상대로 2018년에 벌인 소송전은 금방 취소됐으나 구체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양사 지분을 보유한 중국 텐센트가 중재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런 소송전에도 '배그'와 '포나' 두 게임은 세계적 게임으로 완전히 거듭났다.
친구와 적을 오가면서 화해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도 주목된다.
2015년 넥슨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엔씨소프트는 당시 넷마블과 전격적으로 손잡으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바 있는데, 나중엔 넷마블 자회사와 저작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사는 엔씨의 '리니지2'와 '블레이드&소울' IP를 활용한 제휴를 추진하면서 가까운 사이임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넷마블은 2016년 말에 출시한 '리니지2 레볼루션'으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사실상 석권한 바 있다. 리니지2 레볼루션은 엔씨가 IP를 갖고 있던 리니지2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서비스 초기인 2017년 2분기만 해도 이 게임이 넷마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엔씨의 로열티 수익도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