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폐암 신약 '렉라자'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국내 제약사 중 미국에서 항암제로 승인을 받은 최초의 사례인데요. 한때는 '의약품 도매상'이라고 불릴 만큼 신약개발에 소극적이던 유한양행은 어떻게 국내 제약산업사에 한 획을 그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걸까요?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취임한 이정희 대표(현 의장)는 이전과 달리 R&D(연구개발)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펼칩니다. 여기에는 해외 의약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것만으로 미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투자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유한양행은 당시 국내에서 매출액 1조원을 처음 넘긴 선두 제약사였지만 자체 개발한 신약은 2005년 출시한 위염 치료제 '레바넥스'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이마저도 약효와 안전성 등의 제약으로 시장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타사와 비교하면 뒤늦게 신약개발에 뛰어든 유한양행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유망한 기술을 갖춘 바이오벤처와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발적 협력) 전략을 추진합니다. 이 일환으로 2015년 다수의 바이오벤처로부터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했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렉라자였죠.
유한양행은 오스코텍으로부터 렉라자를 이어받아 자체 R&D 인력으로 임상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표적항암제 '리브리반트'와 시너지를 낼 약물을 찾던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이노베이티브 메디슨(옛 얀센)의 눈에 렉라자가 들어왔고, 양사는 12억5500만달러(1조6600억원)에 렉라자의 글로벌 권리를 이전하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렉라자는 지난 2021년 국내에서 단독투여하는 방법으로 먼저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어 지난 20일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으로 미 FDA로부터 폐암 1차 치료제로 승인을 받는 쾌거를 이루게 되죠. 향후 미국에서 제품이 출시되면 유한양행은 6000만달러(800억원)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수령하고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로열티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렉라자의 FDA 허가를 "국내 신약 개발 역사상 기념비적"인 성과라고 평가하면서 렉라자의 가치를 약 3조4000억원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렉라자의 가치를 끌어올릴 성장요인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죠.
유한양행과 존슨앤드존슨은 현재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요법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만약 승인이 이뤄지면 시장성 확대와 3000만달러(400억원) 규모의 추가 마일스톤 수령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정맥주사제로만 허가 받은 리브리반트 피하주사(SC)제형과 렉라자의 병용요법이 존슨앤드존슨 주도로 개발 중인데요.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암학회(ASCO)에서 이는 이번에 허가받은 치료법보다 투약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데다 약효까지 개선한 효과를 나타냈죠.
내달 유럽에서 열리는 암학회(ESMO)에서는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화학항암치료제를 병용투여하는 임상결과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하면 렉라자의 가치가 한 층 더 증가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의 신약개발 여정은 렉라자로 그치지 않을 전망입니다. 유한양행은 2018년 얀센에 렉라자를 수출한 이후 길리어드사이언스, 베링거인겔하임 등 해외 제약사에 총 3개의 약물을 추가로 이전했습니다. 또 2015년부터 이어오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렉라자를 이을 신약후보물질을 부지런히 발굴해왔죠.
차세대 렉라자로 주목받는 후보물질은 지난 2020년 국내 바이오벤처인 지아이이노베이션으로부터 도입한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입니다. 최근 공개한 임상 1a상 결과에서 경쟁약보다 강하고 지속력 있는 약효를 확인했습니다.
유한양행은 오는 2026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가장 좋은 상품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도움 주자'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유한양행 임직원들은 이러한 그의 정신으로 이제 혁신신약 개발로 전 세계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잇고 있습니다.
조욱제 대표는 렉라자 허가 이후 "이번 승인은 종착점이 아닌 하나의 통과점"이라며 "R&D 투자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혁신신약 출시와 함께 유한양행의 글로벌 톱 50위 제약사 달성을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유한양행이 앞으로 제2, 제3의 렉라자를 선보여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