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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 두렵거나 설레거나

  • 2013.06.06(목) 15:56

1994년 2월초 어느 월요일. 수습기자로 처음 경찰서를 도는 날. 일찍 잠자리에 들긴했지만 취재 현장에 투입된다는 긴장감에 자는둥 마는둥. 새벽 3시, 알람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파트 문을 나서는 순간 '그렇게 원했던 기자..이제 시작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청량리경찰서 정문앞. '쫄지 말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형사계로 직행. 당직 데스크가 힐끔 쳐다본다. 50줄은 돼 보이는데 입이 안 떨어진다. 경찰은 계급·나이를 막론하고 '형님'으로 부르라는 게 선배들의 지시. '까짓 거 가보자. 기잔데 뭐'

 

"형님, 별 거 없죠? 당직사건기록부 좀 보게요". 간밤에 일어난 사건사고들을 취재수첩에 열심히 적고 있는데 한마디 툭 던진다. "첨 보는데, 어디야?"...'이마에 써붙이고 다녔나. 어떻게 알았지'..."국민인데요"

 

어설프게 시작된 기자 생활. 19년이 훌쩍 흘렀다. 첫 직장인 국민일보에서 7년여를 보내고, 2000년초 이데일리(edaily) 창간때 발을 들여 12년을 일했다. 이번에 적(籍)을 바꿨다. 뜻을 같이 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모여 '비즈니스워치(Businesswatch)'를 만들었다. 3번째 직장이고, 2번째 창간이다. 

 

새 출발! 두렵지 않은 시작이 어디 있으랴.

 

기자로 첫 걸음을 떼던 그 겨울 새벽만은 아니었다. 서울에 유학와 기숙사에서 보낸 첫 날, 대전 여관방에서 뜬 눈으로 지샌 입영전야. 이 길의 끝에는 어떤 세상이 열릴까? 사표를 내고 새 매체를 만들어 보겠다며 돌아다니던 무렵, 새 출발에 대한 불안은 이어졌다.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았다. 한 선배는 "바깥은 생각보다 춥다. 문밖에 나서는 순간 한겨울"이라고 했다. 후배로부터는 철없다는 핀잔도 들었다. "이젠 맞춰주고 적응하며 살 나이 됐잖아. 굳이 사서 고생을 하려고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만큼은 머리가 굵었다. 문밖이 춥다는 건 이데일리 출범때 겪어봤다. 비(非) 제도권의 군소매체 기자로 살아가기. 어려움이 많았다. 타사 동료들, 출입처 홍보맨들은 전처럼 살갑지 않았다. 기자실에서 쫓겨나 쪽방에서 기사를 썼고, 보도자료는 뚝 끊겼다. 취재 현장에서 분초를 다투며 속보를 쏟아내는 일. 머리와 손이 익숙해지기 전까진 매일매일 버거웠다. 후배 말대로 '사서 고생'을 했다. 덕분에 목에 힘빼고, 고개 숙이며 사는 법도 배웠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이란 혹한기를 거치며 경제 뉴스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 경제 매체들의 호시절이었다. 새로 만든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틀을 갖춰갔고 젊은 피들이 수혈되면서 활력이 더해졌다. 나름의 노력이 보태지면서 시장에 브랜드도 각인시켰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뭔가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우리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걸었더라면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비즈니스워치를 통해 대단한 일을 해보겠다는 건 아니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 기자로서 견지해야 할 가치 같은 것들을 새로운 매체를 통해 추구해 가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자산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들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언론사 오너나 경영진은 인적자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용이나 도구로 간주하는 경우가 적잖다. 자산은 투자하고 육성해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원동력이고, 비용은 아끼고 줄여야 할 대상인데 편의에 따라 혼용 내지 악용한다. 비즈니스워치는 기자 개개인의 역량과 브랜드를 키워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할 것이다. 능력있는 기자들이 모여 회사의 브랜드와 평판을 형성하고, 조직과 개인이 선순환을 통해 진화해 가는 그런 매체를 만들고자 한다. 

 

뉴스 편집에는 큐레이션(Curation) 개념을 도입했다.

 

뉴스의 주요 유통경로인 포털엔 유사한 컨텐츠가 넘쳐나고 잡다한 정보가 홍수를 이룬다. 비즈니스워치는 독자들이 필요로 하고, 알아야 하는 뉴스만 엄선해서 서비스 할 생각이다. 선택한 이슈들은 깊이있게 분석하고 면밀히 진단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텍스트 외에 그래픽과 동영상 등 다양한 요소를 동원해 뉴스의 부가가치를 높여가는 작업을 병행해 나갈 것이다. 기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공생하는 생태계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편집국 운영의 기본 방향은 'Fun & Value'로 잡았다. 일은 재미있게 하고, 가치있는 기사를 쓰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는 거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을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익숙하지 않은 길에는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 길에 의미가 있다면 걸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료들과 조급해 하지 말고 보조를 맞춰 가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색다른 풍경, 뜻밖의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즐거움까지 보탤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새 출발! 설레지 않은 시작은 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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